중소 암호화폐거래소들이 무더기로 ‘잡코인’ 상장폐지에 나섰다. 관련 법상 오는 9월 24일 이후에도 원화 거래 중개를 계속하려면 은행으로부터 실명 확인 입출금 계좌를 받아야 하는데 은행은 거래소 평가 시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암호화폐), 이른바 잡코인이 많을수록 불리하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회원 수를 늘리기 위해 알트코인을 줄줄이 상장했던 거래소들이 하루아침에 100개가 넘는 암호화폐를 상장폐지하면서 투자자들만 큰 손실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1일 서울경제가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받은 국내 암호화폐거래소 20개를 전수조사한 결과 지난달 상장폐지가 결정된 암호화폐 수는 총 181개(중복 포함)로 집계됐다. 대표적인 것이 원화 일간 거래액 규모 5위(1일 오후 2시 기준 3억 1,632만 달러)인 프로비트다. 프로비트는 이날 “오후 3시부터 144개의 암호화폐 거래 지원을 종료(상장폐지)한다”며 “9월 1일까지 출금은 가능하다”고 공지했다. 프로비트의 한 관계자는 “은행 실명 입출금 계정을 받기 위해 위험성이 높은 코인을 정리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로써 한때 500개가 넘었던 프로비트 상장 코인은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거래액 규모 7위(1억 2,400만 달러)인 포블게이트 역시 상장폐지가 공지된 암호화폐 수가 3월 12개에서 4월 17개, 5월 18개로 늘었다. 상장폐지 전 단계인 유의 종목 지정 코인 수도 3월 16개에서 4월 24개, 5월 32개로 두 달 새 두 배 증가했다. 거래소 에이프로빗은 4월 상장폐지한 코인이 없었지만 5월 4개의 퇴출을 결정했고 이날 11개 코인을 유의 종목으로 추가 지정했다. 현재 국내 암호화폐거래소는 정부가 파악한 곳만 60여 개에 이른다. ISMS 인증을 받은 곳이 중소 거래소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장폐지된 코인 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암호화폐를 무더기로 상장했던 중소 거래소들이 이제는 살아남기 위해 대규모로 상장폐지를 하는 무책임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코인이 퇴출되면 다른 거래소로 옮길 수 있다지만 이미 상장폐지 결정으로 가격이 급락해 투자자는 돈을 사실상 다 날리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정부도 코인이 서서히 상장폐지되도록 유도해 시장 충격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태규 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