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에너지공과대의 운영 비용 외에 탈원전 정책에 따른 사업 비용 또한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보전하도록 하면서, 전력기금이 정부 정책 추진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때그때 꺼내쓰는 일종의 ‘예비비’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기금의 경우 국회가 운용계획안 및 기금 결산에 대한 심사권을 가지고 있지만 정부가 세입·세출 예산과 상관없이 기금을 운용할 수 있어 견제가 쉽지 않다.
1일 관련 법령에 따르면 전기사업법 제 48조는 전력기금의 설치 목적에 대해 ‘전력산업의 지속적인 발전과 전력산업의 기반조성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해놓았다. 정부는 또 관련 법령에 따라 전기요금의 3.7%를 전력기금으로 징수해 확보한다. 실제 지난해 전력기금 사용 계획을 살펴보면 ‘신재생에너지 핵심 기술 개발’에 2,594억 원을 배정하는 등 대부분이 ‘전력산업 기반조성’에 사용됐다.
다만 원자력발전 감축을 위해 전력기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전기사업법 시행’ 일부 개정안이 이날 국회를 통과하며 탈원전 비용도 전력기금으로 지원이 가능해졌다. 전기사업법 개정안은 예산 관련 내용이 담기지 않아 정부 부처 간 회의인 국무회의만으로 수정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기준 약 3조 9,600억 원 규모의 전력기금이 빠르게 고갈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국회 등에 따르면 탈원전으로 인한 원전 계획 백지화 및 가동 중단 등으로 발생하는 비용만 최소 1조 4,445억 원 수준이다. 이외에도 정부는 지난 1월 전기사업법 시행령을 개정해 한전공대 설립 비용 1조 6,000억 원 중 일정 부분을 전력기금에서 조달이 가능하도록 했다. 한전공대 설립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다.
최근 들어서는 정치권에서도 전력기금을 활용해 송전탑 건설이나 원전 근처 주민 보상 등의 지역 민원을 해결하려 하고 있다. 실제 김태흠 국민의힘 의원 등은 지난달 송전탑 등의 지중화 관련 비용을 전력기금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한 전기사업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석기 국민의힘 의원 등은 올 3월 원전 주변 주민의 건강검진 및 이주 지원 대책을 전력기금에서 부담하도록 한 전기사업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에너지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 시행령 개정으로 전력기금 용처가 종종 바뀌는데다 정치권까지 기금에 눈독을 들이고 있어 기금 건전성에 의문이 생기는 상황”이라며 “전력기금은 전기요금에서 별도 징수하는 ‘준조세’ 성격이 강한 만큼 보다 엄격한 운용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세종=양철민 기자 chop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