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을 4.0%로 전망했다. 글로벌 경기회복으로 수출과 투자가 증가하고 민간 소비도 살아나 회복세가 확대될 것으로 봤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는 말도 했다. 돈줄 조일 준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이 재정을 더 푸는 조치를 준비하고 있어 어리둥절하다. 여당 원내대표는 움츠러든 실물 경기에 온기를 불어넣기 위해 추경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고 기획재정부 차관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준비하면서 세수 여건 변화 및 재정 보강 필요성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언론에서는 슈퍼 추경 얘기가 또 나온다.
추경을 추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예산보다 1분기 세수가 19조 원 더 걷혀서라고 한다. 하지만 초과 세수는 정부와 여당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재정법에는 공적 자금 상환이나 국가 채무 상환에 우선 사용하게 돼 있다. 세수가 늘어난 게 흑자 재정이라는 의미도 아니다. 올해 예산은 100조 원 이상 국가 채무가 발생하게끔 적자로 짜였으며 여기에 이미 지난 3월 추경을 하느라 10조 원의 국채를 더 발행하도록 했다. 빚이 쌓여가는 마당에 세수가 조금 늘었다고 그마저 쓰자는 발상이 놀랍다.
재정의 선순환 효과도 추경의 논리로 등장한다. 확장 재정 덕분에 경제가 빠르게 회복되면서 큰 폭의 세수 회복으로 이어져 재정 건전성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소득 주도 성장의 궤변을 뺨치는 논리 비약이다. 올해 경제가 살아난 큰 이유는 백신 보급으로 선진국 경기가 회복돼 수출이 40% 이상 증가했기 때문이다. 케인스 이래 재정 지출 효과는 경기 침체기에 한시적으로 나타난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국회예산정책처도 정부 재정 지출의 승수효과가 높지 않다고 분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4월에 세계 각국의 2020∼2026년 재정 전망을 발표했다. 코로나19로 나빠진 재정 상태를 중기적으로 어떻게 회복해나가는가를 알아보는 지표다. 한국은 6년 동안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21%포인트 늘어나 선진국 중 두 번째로 높게 증가한다. 독일·캐나다 등에서 국가 채무 비율을 줄이는 것과 대조된다. 안드레아스 바우어 IMF 한국 미션단장은 인구 고령화로 추가되는 채무가 늘어나면서 부채가 폭발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전 세계 90여 개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재정 준칙을 도입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해 GDP 대비 국가 채무 60%, 재정 적자 3% 이내를 기본으로 한 재정 준칙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둘 중 하나를 초과해도 다른 하나가 그에 상응하는 만큼 밑돌면 되도록 했다. 대규모 재해, 글로벌 경제위기나 경기 둔화 시에는 적용 예외를 인정하고 시행 시점도 오는 2025년으로 한 느슨한 형태지만 국회가 아직 처리하지 않고 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국의 국가 채무가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이며 2024년 60%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오랫동안 확립해왔던 한국의 재정 규율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도 마지막 시험대라고 볼 수 있다. 어느 정치인 말대로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는 아니지만 국민과 후손을 위해 건전한 재정을 유지해야 할 임무가 그에게 있다. 두 가지를 주문한다. 첫째, 전국민재난지원금이라는 미명의 현금 살포를 위한 추경을 막아야 한다. 둘째, 내년 예산과 2021∼2025 재정 운용 계획에 재정 건전성이 확보되도록 신경 써야 한다. 국가 채무 비율 60% 이내가 실질적으로 지켜질 수 있도록 작성해야 한다.
/여론독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