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칼럼

[김형철의 철학경영] 얼룩말처럼 둔감하게 살아라

[149] 과거에서 교훈을 얻자

전 연세대 교수

인간의 기억은 병주고 약주는 능력

위기 벗어나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과거에서 교훈 얻고 감정은 잊어야

리더 성공에 안주하면 조직 사라져

김형철 전 연세대 교수


“여러분, 멍게는 뇌가 있을까요, 없을까요”라고 강연에서 물어봤다. 청중의 관심을 끌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 다소 충격적이고 생소한 질문을 시작에 던지는 것이다. 해양생물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에게 이 퀴즈는 꽤 난도가 높은 질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바로 한 명이 손을 번쩍 들기에 깜짝 놀랐다. “예, 멍게에게는 뇌가 없다고 봐야 합니다. 제가 줄곧 관찰한 바에 따르면 멍청하고 게으른 리더(멍게)는 유뇌자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을 너무나 많이 합니다.” 좌중에서 폭소가 터져 나온다. 일단 내 강연은 성공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강연에서 웃음이 얼마나 빨리 터지느냐는 어린아이가 출생 후 얼마나 빨리 우느냐만큼 중요하다. 인간관계에서 웃음보다 더 좋은 아이스 브레이킹은 없다.





멍게는 태어날 때 뇌가 분명히 있다. 유충으로 살아갈 때는 물속에서 헤엄치며 다닌다. 다른 포식자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무척 애쓰면서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바위에 고착하는 데 성공한다. 아마 과학적으로 더 정확한 이야기는 본능적 프로그램에 따라 그렇게 되는 것이리라.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멍게의 뇌가 없어진다. 왜? 더 이상 생존에 뇌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일은 멍게가 자신의 뇌를 스스로 먹어 치운다는 사실이다. 존재 이유가 없어진 기관을 자신의 영양 식자재로 사용하는 것이다. “생각하면서 살아라. 그렇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의 말이다. 요즘 주변에 정말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아니, 남 이야기할 것 없다. 나부터 성찰해보는 것이 올바른 자세다.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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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의 하루 일상을 자세히 관찰한 심리학자가 있었다. 하루의 95%는 아주 평화로운 삶의 연속이었다. 그저 풀 뜯어 먹고 똥 싸고 잠자는 것이 전부였다. 평화롭다 못해 지루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나머지 5%는 좀 다르다. 사자가 먹이 활동을 시작하면 얼룩말들은 극도의 긴장 상태에 들어간다. 삶과 죽음의 교차점에 설 수밖에 없다. 결국 힘이 약하고 달리기가 서툰 한 마리가 제물이 되고 나서야 그 살벌한 게임은 막을 내린다. 우리가 얼룩말과 같은 삶을 매일 살아간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스트레스를 엄청 받을 것이다. 그러면 위궤양에 걸릴 것이다. 그러나 스탠퍼드대 심리학자 로버트 새폴스키가 밝힌 바에 따르면 어떤 얼룩말도 위궤양에 걸리지 않았다. 왜 그럴까. 얼룩말은 그 상황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일들을 까맣게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인간은 낮에 직장에서 있었던 동료와의 갈등을 집에 와서도 못 잊는다. 평생 한을 품고 살아가기도 한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이유가 바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기 때문이다. 상상하고 기억하는 사고 능력은 우리에게 병 주고 약 주는 능력이다.

낚시를 하면 가끔 몸 전체에 이미 낚싯바늘이 두세 개 있는 물고기가 잡혀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 미끼를 물면 삶이 위험에 처한다는 교훈을 얻지 못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물고기에게는 기억하는 능력이 없다. 인간은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어떻게 위기를 벗어나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해결책은 하나다. 과거를 잊어라. 과거의 실패도 성공도 다 잊어라. 지나간 일은 지나간 것이다(Bygone is bygone). 과거를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과거에 있었던 사건으로부터 교훈을 빨리 얻는 것이다. 교훈을 얻지 못한 사람은 과거를 잊지 못한다. 진짜 중요한 것은 과거를 그냥 다 잊어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교훈은 얻고 사실은 기억하고 감정은 잊어라.

개인만이 아니다. 리더가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면 조직도 멍게처럼 뇌가 없어진다. 늘 과거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는 조직은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결국 사라진다. 리더가 제대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과거 감정만 들춰내면 국가도 위궤양에 걸리게 된다. 증오 감정만 조장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멍게나 하는 짓이다. 얼룩말처럼 둔감하게 살아라.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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