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대한민국 경제를 책임질 핵심 산업이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꼽았다. 당시 삼성·LG 등은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해온 액정표시장치(LCD) 제조 기술력을 차곡차곡 쌓아 노트북, 모니터, 대형 TV 시장을 장악하며 성장을 거듭해왔다. 디스플레이 산업에 대한 ‘국가적 기대’는 2010년 초반까지도 강력했다. 2011년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이 기록한 수출 성과는 332억 달러로, 같은 시기 반도체는 501억 달러를 수출했다. 두 산업 간 격차는 이듬해 더욱 줄어들어 디스플레이는 367억 달러, 반도체는 504억 달러를 수출했다. 간극은 137억 달러에 불과했다.
그 후로 10년이 지났다. 반도체로 벌어들인 외화는 디스플레이의 그것보다 5배 이상 많다. 비대면 경제가 활성화된 코로나19 시대에 반도체는 ‘산업의 쌀’로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여전히 디스플레이 산업에 대한 기대가 남아 있지만 사람들은 차세대 먹거리로 배터리를 꼽는 일이 잦아졌다. 무엇이 두 산업의 희비를 가르게 된 것일까. 여러 요인들이 거론되고 있지만 취재 현장에서 만난 업계 종사자들은 “기술 국외 유출이 빚어낸 결과”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일부 기술을 제외하면 중국이 한국을 바짝 따라잡아, 더는 ‘기술 노하우만 뽑아내고 해고할’ 한국인 엔지니어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자조 섞인 말까지 들린다.
올해부터 정부는 반도체와 조선·자동차 등 12개 분야의 71개 기술을 국가 핵심 기술로 확대 지정하고 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는 등 과거보다 강력한 보호 조치를 마련했다. “국외 이직 이후의 처벌은 사후약방문”이라거나 “엔지니어의 재취업과 창업 지원 없는 미봉책”이라는 비판도 일부 나오지만 대부분은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방벽이 보수됐다고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지속적인 정책 모니터링은 물론 기업과 함께 인재 유출의 원인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과거는 무한 반복될 것이다.
/이수민 기자 noenem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