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출입은행이 아랍에미리트(UAE)의 거대 국영기업과 50억 달러(한화 5조 6,000억 원) 규모 ‘발주처 금융’ 협정을 맺는 데 성공했다. 통상 공적수출신용기관(ECA)인 수은은 해외 건설이나 플랜트·선박 등 개별 프로젝트에 직접 대출이나 보증 방식으로 의 수출을 지원해 왔다. 개별 프로젝트가 아닌 발주처와 직접 한도 방식의 금융 약정을 체결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번 협정이 국내 기업이 중동에서 플랜트나 인프라 등 거대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방문규 수은 행장은 20일(현지 시간) UAE 아부다비 국영에너지기업(ADNOC) 본사에서 술탄 아흐마드 알자베르 회장과 만나 50억 달러 규모의 ‘중장기 금융 한도 약정’을 위한 금융 협력 협정서에 서명했다. ADNOC은 아부다비 정부가 지분 100%를 보유한 기업이다.
이번 중장기 금융 한도 약정은 일종의 ‘디딤돌’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선 수은이 ADNOC과 금융 제공 한도와 지원 조건 등을 미리 약속한다. 이후 향후 프로젝트가 발주되면 대주단으로 우리 기업의 수주를 지원할 수 있게 된다. 쉽게 말해 ADNOC이 수은의 금융 제공을 바탕으로 대규모 프로젝트를 발주하면 그만큼 우리 기업이 수주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또 이번 협약서에는 ADNOC이 올해 발주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우리나라 기업이 수주할 경우 금융을 제공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ADNOC은 총사업비 31억 달러(3조 5,000억 원) 규모인 해상 원유 생산 시설 전력 공급용 해저 송전망 사업과 60억 달러(6조 8,000억 원) 규모 폴리에틸렌 생산 시설 건설 사업을 발주할 예정이다. 올해부터 2025년까지 ADNOC이 세운 시설 투자 계획 규모만도 1,220억 달러(127조 4,000억 원)에 달한다.
이번 협정은 저유가발(發) 물량 급감으로 중동에서 고전을 거듭하고 있던 국내 기업에도 전기가 될 수 있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314억 달러에 달했던 중동 지역 기간 공사 금액은 지난해 133억 달러까지 쪼그라들었다. 저유가로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가 줄어든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중동의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자체 자금을 투입해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중동 국가도 저유가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금융을 통한 적극적인 차입 전략을 펴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 기업의 중동 건설 수주액은 전년 대비 179.5% 급증했다.
수은 관계자는 “최근 해외 플랜트 시장은 ‘선(先) 금융, 후(後) 발주’가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어 우리 기업이 타국 기업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수주 경쟁을 펼치려면 금융 조달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수은은 향후에도 사우디 아람코, 카타르 QP 등 중동의 주요 에너지 공기업과도 협력 강화에 나서 국내 기업의 중동 수주를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김상훈 기자 ksh25t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