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회계 투명성 수준이 최근 2년 사이에 대폭 개선됐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신외부감사법(신외감법) 도입 이후 회계 규제가 강해지면서 감사인 독립성, 재무제표 작성 투명성이 높아졌다고 체감하는 국내 기업들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1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국가 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회계 투명성 순위는 올해 총 64개국 중 37위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46위)보다 9계단 상승한 것이다. 지난 2년 전과 비교하면 무려 24단계이나 뛰어올랐다. 최근 2년간 회계 부문 경쟁력이 20단계 이상 오른 국가는 우리나라뿐이다.
IMD 회계 투명성 순위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매년 발표하는 회계 분야 평가와 함께 국가별 회계 경쟁력을 가늠하는 지표로 주로 쓰인다. 해당 국가의 기업 재무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감사·회계 업무가 적절하게 실시되는가’라는 6점 척도의 질문을 함으로써 순위를 결정한다.
회계 당국,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에 순위가 대폭 오른 것에 고무된 모습이다. 2010년도 들어 IMD 회계 투명성 순위가 최하위권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41위에서 2013년 58위로 떨어진 후에는 수년째 50~60위권에 머물러 있었다. 2014년에는 한국공인회계사회에서 IMD 등에 회계 투명성 평가 방식 개선을 촉구하는 서면을 보내기도 했다. 설문 항목이 지나치게 주관적이라서 순위가 낮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2015년 이후 대우조선해양 사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의혹이 연달아 터지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체감하는 한국의 회계 투명성은 계속 바닥을 길 수밖에 없었다. 2017년에는 63위로 조사 대상 국가 중 꼴찌였다.
업계 안팎에서는 최근 순위가 급등한 배경으로 2018년 신외감법 도입을 꼽는다. 주기적감사인지정제와 표준감사시간제가 도입되고 내부회계관리제도가 강화되면서 감사인의 독립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외감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난해에는 우리나라의 IMD 회계 투명성 순위가 46위를 기록해 2019년 61위에서 15계단이나 올랐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신외감법 도입 효과로 순위가 급등한 영향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IMD 설문에 응하는 주체들이 기업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크다는 해석도 있다. 그간 기업들은 “신외감법 도입으로 감사 비용이 지나치게 올랐다”고 목소리를 높여왔기 때문이다. 전규안 숭실대 회계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주기적지정제·표준감사시간제 시행으로 힘들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신외감법 도입이 긍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인식한다는 방증”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IMD 회계 투명성 순위가 ‘인식 변화’를 나타낼 수는 있어도 ‘회계의 질 자체’가 나아졌다는 직접적인 증거까지는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신외감법 시행 후 감사 환경이 좋아지다 보니 재무제표 작성 단계에서 의사 결정하는 기업 분들이 스스로 긍정적으로 평가하신 것 같다”면서도 “규제가 강해졌다는 체감 때문에 실제로는 회계 투명성이 향상되지 않았음에도 ‘우리가 투명하게 일을 한다’고 잘못 인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종수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신외감법 시행 후 좋아진 것은 사람들의 (회계에 대한) 센티멘트(정서)가 바뀌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우일 기자 vit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