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기관 경영평가에서 ‘계산 실수’로 인해 총 10개 기관의 종합 평가 등급이 조정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공기관 경영 평가 업무를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는 평가단장을 맡았던 최현선 명지대 교수를 해촉하는 한편 평가 체계 종합 개선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는 평가 시스템 자체의 문제로 파악하고 공공 기관 경영 평가 전담 기관 신설 방안 등을 포함해 오는 8월까지 경영 평가의 종합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다.
기획재정부는 25일 이 같은 내용의 ‘2020년도 공공 기관 경영 평가 결과 수정 및 향후 조치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에 앞서 지난 18일 4개 공공 기관 최고경영자(CEO)의 해임 건의 등을 포함한 경영 평가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23일 상세 평가 내용이 각 기관에 전달된 후 ‘계산 오류’에 대한 이의 제기가 빗발치면서 평가 결과를 재확인한 결과 다수 오류가 발견돼 이날 등급을 정정해 재발표했다.
새롭게 바뀐 평가 결과에 따라 공무원연금공단(B→C)과 국민건강보험공단(A→B),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B→C),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B→C), 한국과학창의재단(C→D) 등 5개 기관은 평가 등급이 모두 1계단씩 내려갔다. 등급이 하향 조정된 기관 임직원들은 모두 성과급 삭감 조치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건보공단의 경우 최초 등급(A)에서는 기본급의 80%를 성과급으로 받을 수 있었으나 바뀐 등급(B)에서는 성과급은 60%로 줄어든다. D등급으로 내려간 과학창의재단은 경영 평가 결과에 따른 성과급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반면 한국가스안전공사(D→C), 한국산업인력공단(D→C), 한국연구재단(B→A), 한국기상산업기술원(D→C), 한국보육진흥원(E→D) 등 5개 기관은 평가 점수가 상향 조정됐다.
이번 평가 오류는 102개 준정부 기관들에서 발견됐으며 한국전력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29개 공기업에 대한 평가에는 문제가 없었다. 이에 따라 임직원 땅 투기 의혹으로 D등급을 받은 LH의 평가 등급도 그대로 유지된다.
공기관 평가에서 이처럼 황당한 실수가 일어난 배경에 대해 기재부는 “평가 배점 가중치가 일부 잘못 적용됐고 일부 기관은 평가 점수가 아예 누락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평가표상 ‘일자리 창출’ ‘균등한 기회와 사회통합’ 등 4개 항목의 배점은 기준 배점의 50% 범위 안에서 해당 기관이 점수를 설정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평가단이 기관들이 선택한 배점을 적용하지 않고 기준 배점을 모두 일괄 적용하며 오류가 빚어졌다는 얘기다. 예를 들면 일자리에 자신이 있는 기관은 기준 점수(3점)에 50%를 가중한 4.5점을 최대 점수로 설정할 수 있는데 평가단이 이를 반영하지 않고 3점 만점 기준으로 점수를 준 것이다. 입력 오류도 1곳 나왔다. .
이에 따라 종합 등급 기준 10개 기관의 평가 등급이 변경됐고 13개 기관은 성과급 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 관리, 주요 사업 등 세부 범주에서 등급 변화가 나타났다.
평가 등급이 대거 조정되면서 후속 조치도 바뀐다. 한국기상산업기술원은 D에서 C로 올라가며 기관장 경고 조치 대상에서 제외되고 한국가스안전공사·한국산업인력공단·한국기상산업기술원 등도 C등급으로 상향 조정되며 경영 개선 계획 제출과 내년도 경상경비 1%포인트 삭감에서 제외된다. 기관장 해임 경고를 받았던 한국보육진흥원은 E등급에서 D등급으로 1단계 상향됐지만 2년 연속 D등급 기관에 해당 돼 해임 건의 조치는 유지됐다.
기재부는 이번 평가 오류 사태에 따라 다양한 종합 대책을 시행하기로 했다. 평가단장을 비롯해 평가위원을 해촉하는 한편 평가단과 용역 계약을 맺는 조세재정연구원에 대해서도 예산 삭감 등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이와 더불어 평가단 내부에 검증 및 관리 장치를 마련해 평가 정합성을 강화하는 한편 공기업과 평가단 사이의 협의도 정례화하기로 했다.
또 조세연 공공기관연구센터를 평가 지원 전담 조직으로 개편해 평가 산식 및 입력 과정 전반에 대한 행정 서비스를 지원하도록 했다.
안도걸 기획재정부 2차관은 “공공 기관 평가의 신뢰가 크게 훼손된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번 경영 평가 오류에 대해 일각에서는 공정성 시비에 공무원들이 몸을 사리며 평가 등에 대한 권한을 외부에 지나치게 위탁한 것이 원인이라는 지적도 내놓는다. 한 전직 관료는 “기재부가 평가에 직접 개입하지 않기 위해 외부에 전부 위탁한 것이 사실 원인”이라며 “전문 평가 기관을 따로 설립하기 전까지는 최소한 확인 작업은 기재부가 직접 챙겨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