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뉴요커의 아트레터]맨해튼의 성수동, 트라이베카

[뉴요커의 아트레터]⑥젊은 갤러리들의 트라이베카

첼시 임대료 상승으로 유망 화랑들 옮겨가

뉴욕의 주요 갤러리들 상당수가 옮겨가고 있는 트라이베카 지역의 현재 모습.뉴욕의 주요 갤러리들 상당수가 옮겨가고 있는 트라이베카 지역의 현재 모습.




과거 서울에서는 종로구 인사동과 마포구 홍익대 근처를 중심으로 많은 예술가들이 활동했고, 다양한 화랑들도 이 주변에 자리 잡았다. 요즘 젊은 갤러리들은 성동구 성수동에 밀집한 산업용 공장과 창고들을 리모델링해 새로운 작가들의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더 힐, 나인원, 사운즈 한남 등지로도 갤러리들이 몰리면서 새로운 문화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고급 갤러리들이 밀집해 있는 뉴욕 첼시의 전경. /사진출처=NYC Galleries Report Shows LES Gains Ground고급 갤러리들이 밀집해 있는 뉴욕 첼시의 전경. /사진출처=NYC Galleries Report Shows LES Gains Ground


뉴욕도 마찬가지다. 과거 뉴욕의 갤러리들은 미드타운의 57가, 어퍼 이스트사이드, 소호, 첼시를 중심으로 위치했다. 이러한 분포에는 유명 갤러리스트(아트 딜러)의 역할이 컸다. 1950~60년대에는 미국 팝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로이 리히텐슈타인, 추상표현주의의 잭슨 폴록·윌리엄 드쿠닝 등의 탄생에 기여한 전설적인 갤러리스트 레오 카스텔리를 중심으로 미드타운과 어퍼 이스트사이드에 많은 갤러리들이 자리잡았다. 요즘과 달리 당시에는 예술가와 갤러리스트, 컬렉터들이 한자리에 모여 예술에 관해 자유롭게 토론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이에 갤러리들은 컬렉터들이 주로 거주하는 메디슨 에비뉴를 중심으로 위치했다. 1980년대에는 신디 셔먼·장 미셸 바스키아 등을 발굴한 래리 가고시안이 산업용 창고들이 밀집해 있던 첼시 지역에 갤러리를 추가적으로 확장했다. 이를 중심으로 1990년대부터 많은 갤러리들이 첼시로 이주했다. 2000년대에 이르러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첼시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자,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소규모 갤러리들은 로워 이스트사이드나 브루클린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최근 트라이베카에 분관을 연 The Hole NYC 갤러리 전경.최근 트라이베카에 분관을 연 The Hole NYC 갤러리 전경.


최근 3년새 뉴욕 맨해튼에서는 트라이베카를 중심으로 새로운 문화 지도가 그려지고 있다. 트라이베카는 맨해튼 서쪽 다운타운 위에 위치한 동네다. 서쪽 허드슨강과 인접한 대서양을 통해 들어오는 대다수 화물을 선적하는 주요 항구였으며, 미국 중· 서부에서 철도와 트럭으로 운반된 물류들이 모이던 트라이베카는 19~20세기 맨해튼 물류교통의 중심이었다. 식료품을 비롯한 다양한 소비재들을 저장하는 창고들이 트라이베카에 들어선 이유다.

그렇다면 갤러리들은 왜 트라이베카로 몰려드는 것일까? 첼시 지역의 가파른 임대료 상승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또 다른 원인은 온라인 쇼핑의 증가다. 기존 소매업자들은 온라인으로의 체제 전환을 경험하면서 트라이베카에 자신들의 상점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다. 공실이 많아졌고, 첼시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트라이베카의 임대료는 갤러리들에게 매력적이었다.

The Hole NYC갤러리의 트라이베카 개관전을 장식한 페드로 페드로의 작품.The Hole NYC갤러리의 트라이베카 개관전을 장식한 페드로 페드로의 작품.



이미 트라이베카는 맨해튼 내 새로운 문화 지역이 될 준비가 돼있었다. 1960년대 뉴욕시의 도시재생사업으로 트라이베카에 있던 오래된 건물들이 철거됐다. 1970년대 들어서는 기존 창고로 쓰이던 산업용 건물들이 로프트 형식으로 개조돼 예술가들의 레지던스로 쓰이기 시작했다. 9·11 테러 직후에는 정부가 피해 지역인 트라이베카의 상권을 활성화하고자 ‘트라이베카 필름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그 결과 2000년대 들어서 트라이베카는 맨해튼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트렌디한 문화지구로 부상했다. 현재 트라이베카는 뉴욕 맨해튼 내 최고 부촌으로 꼽힌다. 명성에 걸맞게 유명 할리우드 스타인 제이크 질렌할, 블레이크 라이블리를 비롯해 팝 가수 비욘세·제이지 커플 등이 트라이베카에 거주하고 있다.

관련기사



트라이베카에 위치한 갤러리 P.P.O.W 전경.트라이베카에 위치한 갤러리 P.P.O.W 전경.


2010년 후반부터는 본격적으로 트라이베카에 갤러리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첼시에 있던 갤리리 뿐만 아니라 로워 이스트사이드에 있던 갤러리들도 이동하고 있다. 지난 달에는 The Hole nyc 갤러리가 로워 이스트사이드 지점을 유지한 채 트라이베카에 분관을 열었다. 바스키아풍의 낙서그림으로 유명한 캐서린 버나드가 속한 Canada 갤러리를 비롯해 유망한 젊은 작가들을 꾸준히 전시하는 1969 갤러리도 트라이베카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의 갤러리현대도 지난 2019년 트라이베카에 프라이빗 쇼룸을 오픈했다. 다양한 국내 작가들을 뉴욕의 컬렉터들에게 선보이기 위해서다.

갤러리 P.P.O.W에서 열린 유망작가 에린 M.라일리의 개인전 전경.갤러리 P.P.O.W에서 열린 유망작가 에린 M.라일리의 개인전 전경.


이처럼 트라이베카에 속한 갤러리들은 첼시의 메가 갤러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에너지로 넘친다. 과거처럼 한 사람의 스타 갤러리스트에 의해 갤러리 지구가 형성되기 보다 개별 갤러리들이 가지는 독특한 스타일과 젊은 아티스트들이 응집력을 형성하는 분위기다. 트라이베카에 위치한 갤러리들은 ‘트라이베카 아트+컬처 나이트'라는 예술축제를 조직해 저녁 9시까지 운영하기도 한다. 인디펜던트 아트 페어인 ‘트라이베카 갤러리 워크’ 행사도 지난해 9월부터 열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19개의 갤러리들이 참여해 호평받은 후, 지난 5월 행사에는 42개나 되는 갤러리들이 참가했다.

초대형 갤러리인 하우저앤워스 갤러리와 페이스 갤러리는 지난 2년간 자신들이 속한 첼시에 거대한 빌딩을 신축하며 확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젊은 미들급 갤러리들은 트라이베카에 새로운 갤러리 지구를 형성하고 있다. 마치 한국의 삼청동 일대와 성수동을 보는 듯하다. 자신들의 철학에 맞게 서로 다른 두 지역에서 성장해 가는 갤러리들이 앞으로 뉴욕에서 어떻게 공존하며, 새로운 문화 지도를 만들어 갈지는 주목해 볼 만하다. /글·사진(뉴욕)=엄태근 아트컨설턴트



※필자 엄태근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를 졸업하고 뉴욕 크리스티 에듀케이션에서 아트비즈니스 석사를 마친 후 경매회사 크리스티 뉴욕에서 근무했다. 현지 갤러리에서 미술 현장을 경험하며 뉴욕이 터전이 되었기에 여전히 그곳 미술계에서 일하고 있다.


조상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