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블루칩으로 떠오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거취에 대해 국민의힘 의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지난달 28일 감사원장직을 사임하고 칩거에 들어간 최 전 원장이 사실상 출마 결심을 굳히고 등판 채비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서다. 이르면 내주, 늦어도 7월17일 제헌절을 전후해 공식적으로 등판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들은 특히 최 전 원장이 곧장 국민의힘 합류 의사를 밝힐 경우 야권 전체 지형이 요동칠 수 있다고 보고 그 파급력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한 중진 의원은 1일 연합뉴스에 "최 전 원장은 본인이 대권 결심만 굳히면 국민의힘 입당 외에 다른 셈은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윤 전 총장보다 한 박자 빨리 치고 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또 다른 의원은 "최 전 원장이 직을 사퇴하며 대권에 뜻을 내비친 이후 당내 주목도가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다. 잠재력을 높게 보는 분위기"라며 "'현실은 윤석열이지만 자격은 최재형'이라는 공감대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당장은 지지율 격차가 벌어지고 있지만, 입당 여부에 따라 당내 구도가 재편될 수 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최 전 원장은 ‘까미남(까도 까도 미담만 나오는 남자)’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청렴하고 강직한 이미지가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X파일'과 처가 문제 등 각종 도덕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 윤 전 총장의 대체재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오는 이유다. 같은 여권 출신 인사지만, 보수 정권에 대한 '무리한 수사' 원죄론에서 자유롭다는 점도 비교 우위가 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주목되는 것은 보수진영의 '전통적 텃밭'인 영남권에서 최 전 원장에 대한 신망이 두터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 의원은 "윤 전 총장을 향한 소위 '충청 대망론'과는 성격이 다르다"면서 "어느 곳보다 정권교체 절박성이 큰 만큼 '안전 자산'을 추구하는 심리"라고 설명했다. 그 연장선에서 옛 친박계 전·현직 의원들 사이에 물밑 세력화 움직임도 감지된다. 한 야권 중진은 이런 당 안팎의 기류를 확인하며 "최 전 원장이 '당내 주자'로 인식되는 순간 분위기가 급반전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최 전 원장의 정치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 약점으로 거론된다. 한 평생 판사 등 공직 생활을 하다 보니 여의도 정치권과 접점이 없기 때문이다. 당내 경기고·서울대 법대 동문을 중심으로 일차적인 연결고리가 형성되는 수준이지만, 이 또한 다른 율사 출신 주자들과 겹치는 지점이 많아서 곧바로 '최재형계'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역 중에서는 박진 의원이 최 전 원장과 고교·대학 동기이지만, 지난해 총선에서 강남 공천을 받은 점에서 보듯 경기고 1년 후배인 황교안 전 대표와 교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다선 의원은 "이미 물밑에서 최 전 원장과 접촉 중인 의원들이 꽤 있다"며 "윤 전 총장의 '밀당' 틈새를 파고든 입당으로 승부수를 걸어볼 만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