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고전 통해 세상읽기] 지지유고 언지성리(持之有故 言之成理)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정치인은 지켜야할 언어 규칙 있어

근거·이치없는 주장은 슬로건에 그쳐

말의 상찬·왜곡·선정적 어휘 피해야

발언에 책임지는 '發之有責'도 필요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요즘 여야 정치인들이 내년 20대 대통령 선거에 나선다는 출마 선언을 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개별 정당의 일정에 따라 선거 분위기가 달아오를 듯하다. 출마 선언을 하는 후보들의 말을 들으면 우리는 살고 싶은 집을 마련할 수 있고, 찾고 있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지금부터 5년 전이나 10년 전으로 돌아가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을 겪은 듯하다. 지금부터 5년 뒤에도 비슷한 상황을 겪을 것이다. 시간이 가면서 나아지는 부분도 있고 여전히 나쁜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은 자신이 집권하면 ‘지금보다 나아진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정치인은 왜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하려고 하는 것일까. 정치인은 미래 비전을 제시해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현재와의 차이를 부각해 자신의 정체성을 주장해야 하는 조건 때문이리라.





정치인이 희망과 정체성을 말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지켜야 할 언어의 규칙이 있다. 실현할 가능성이 없지만 듣기에만 달콤하다는 이유로 늘어놓는 말의 상찬, 경선과 선거가 경쟁의 구도로 치른다고 하더라도 없는 이야기를 부풀리거나 상대를 깎아내리는 사실의 왜곡, 선거에 나서는 자신의 이야기보다 상대를 흠집 내서 갈등을 부추기는 저주의 독설, 관심을 끌기 위해 온통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어휘를 뿜어내는 의미의 상실을 피해야 한다.

관련기사



20대 대통령 선거에 나서려는 후보들은 언어 사용에 각별히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순간적으로 잘못된 언어를 사용했다가 지지율이 급락하는 경우를 지난 선거 상황에서 종종 목격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20대 대통령 선거에 나서려는 후보들이 치열한 경쟁 끝에 당선을 거머쥐고 5년 뒤에 ‘성공한 대통령’으로 퇴임하려면 앞으로 자신의 말이 슬로건에 그치지 않고 ‘개념’으로 나아가야 한다. 슬로건은 원래 고대 스코틀랜드 고산 지대에서 사람들을 분기시켜 투쟁하도록 만들었던 우렁찬 외침에 어원을 두고 있다. 여기서 슬로건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외침 등으로 쓰이게 됐다. 선거 유세 현장에서 지지자들이 특정 언어를 연호하거나 시위 현장에서 요구 사항을 반복적으로 외치는 장면을 생각하면 슬로건의 의미를 충실히 이해할 수 있다.

반면 개념은 어머니가 아이를 갖는 임신에 어원을 두고 있다. 이는 사람의 대화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수 있다. 화자가 말을 하면 그 음성이 청자의 고막에 닿고 이어서 신경을 통해 사람의 뇌에 청각 신호를 보낸다. 이때 청자는 청각 신호를 확인하고 그에 어울리는 말을 떠올리면 대화를 이어가지만 그렇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처럼 대화가 진행될 수가 없다.

선거 과정은 슬로건이 필요하고 그 기능을 하겠지만 당선되고 나면 개념이 정책으로 구현돼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 개념이 없고 슬로건만 외친다면 20대 대통령 선거의 후보자는 경선에 이길 수도 있고 선거에서 이길 수 있더라도 5년의 집권 기간에 성공할 수가 없다. 필요하면 슬로건으로 지지자를 끌어모을 수는 있지만 개념이 없으므로 현실의 문제를 타개할 수 있는 정책을 머리에서 잉태할 수도 없고 현실에서 추진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일찍이 순자는 “한 가지 입장을 가지려면 반드시 뒷받침하는 근거가 있어야 하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려면 반드시 이치가 있어야 한다(지지유고?持之有故, 언지성리?言之成理)”고 말했다. 근거가 없이 입장만 내세우고 이치가 없이 주장만 떠벌린다면 슬로건에 그치지만 근거를 갖고 입장을 내세우고 이치를 갖고 주장하면 개념이 된다. 슬로건은 차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수 있지만 현실 적합성과 생산성이 낮다. 적합성과 생산성을 갖추려면 사람이 차를 몰고 목적지로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기능처럼 현실의 문제를 파악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개념을 가져야 한다.

여기에 말만 하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상황을 고려할 때 발언을 하면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한다는 ‘발지유책(發之有責)’을 덧보태면 좋겠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