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 김둘리(가명) 씨는 토스증권을 통해 주식 투자를 하고 있다. 올해부터 ‘나만 벼락거지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계좌만 개설해놨던 기존 증권사를 통해 투자를 시작했지만 용어부터 생소해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토스증권은 인터넷 쇼핑을 하듯 주식을 살 수 있어 토스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금융이 쉬워지고 있다. 그동안 금융은 어려운 용어, 복잡한 절차 등으로 높은 진입 장벽이 있었다. 일반인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쉬운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더니 게임 하듯 저축과 투자를 하는가 하면 유통 기업과 손잡고 친근한 이미지를 쌓아나가는 등 ‘쉬운 금융’ 열풍이 불고 있다.
변화는 전통 금융사보다 핀테크에서 비교적 활발하다. 전통 금융사는 수십 년간 금융 당국의 깐깐한 규제에 길들여져 ‘틀 이외의 것’을 생각하기가 쉽지 않은 반면 핀테크는 ‘왜 안 돼?(Why not?)’ 정신으로 무장했다. 기존 증권사는 주식을 사고파는 것을 ‘매수’ ‘매도’로 표기하지만 토스는 ‘구매하기’ ‘판매하기’라는 누구나 알기 쉬운 용어를 쓰고 있다. 또 현재 가격에 파는 것을 기존 증권사는 ‘보통가 매도’, 본인이 지정한 가격에 파는 것을 ‘지정가 매도’로 칭하지만 토스는 각각을 ‘최대한 빠르게 판매하기’ ‘원하는 가격으로 판매하기’처럼 직관적으로 표기했다.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제품을 접하면 으레 ‘이 회사 주식 살까’ 하는 마음이 드는데 토스는 해당 제품을 검색하면 제조 회사가 어디인지, 주가는 어떤 상황인지를 보여주는 서비스도 시행하고 있다. 가령 새로 나온 과자가 맛이 좋아 그 과자 이름을 토스 검색창에 넣으면 제조 회사와 주가 정보를 알려주는 식이다.
카카오뱅크의 26주 적금도 좋은 예다. 대부분의 적금 만기가 1년 이상인 상황에서 카카오뱅크는 이 같은 관행을 깬 주 단위 적금을 출시해 선풍적인 반응을 얻었다. 매주 본인이 설정한 금액의 2배씩 적금을 부을 수 있게 설계하고 기간 중간에 각종 이벤트도 배치했다. 카카오페이도 ‘동전투자’라는 신개념 투자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카카오페이로 어떤 제품을 살 경우 1,000원 미만의 잔돈은 지정한 펀드에 투자되는 것이다. 어려운 펀드 투자를 재테크에 문외한인 사람도 쉽게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외에 핀테크 업체 핀크는 투자 고수의 포트폴리오를 공개하고, 관심이 가는 사용자를 팔로할 수 있는 ‘리얼리’ 서비스를 운영 중이며 최근 일대일 메시지 전송 기능을 추가했다. 고수는 어떤 주식 종목, 펀드 상품에 투자하고 있는지 등을 한눈에 볼 수 있게 공개해 이용자가 투자에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자리한다. 1980년대 초~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이들은 현재 주력 경제 주체는 아니지만 장차 ‘큰손’으로 성장할 세대다. MZ세대는 어려운 것은 외면하고, 투자와 저축도 게임을 하듯 접근하는 특징이 있다. 이에 맞춰 금융사도 변화하고 있다.
핀테크라는 ‘메기’가 판을 휘젓자 전통 금융사도 발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하나은행의 시도가 대표적인 예다. 최근 하나은행은 Z세대 체험형 금융 플랫폼 ‘아이부자앱’을 출시했다. 부모와 자녀가 주식 투자, 저축 등을 함께할 수 있는 것이 핵심이다. 부모가 주식을 사면 아이가 부모 계좌를 볼 수 있고, 자녀는 ‘주식 매매 조르기’ 기능을 통해 간접적으로 주식 투자도 경험할 수 있다. 부모와 자녀가 매주 한 번씩 4주간 돈을 모으기로 약속하고, 자녀가 모으면 부모도 같은 금액을 매칭해 목표를 달성할 경우 모은 금액을 자녀가 용돈으로 받을 수 있는 기능도 담았다.
우리은행도 6월 초 MZ세대에 인기가 높은 프로 e스포츠 리그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LCK)’ 콘텐츠를 연계해 최대 2.0%의 금리를 제공하는 ‘우리 LCK 적금’을 출시했다. LCK 10개 구단 중 고객이 응원하는 구단을 직접 선택해 가입할 수 있다. 기본 금리 1.0%에 고객이 선택한 응원 구단 성적에 따라 최대 0.7%포인트, 가입 고객 수에 따라 최대 0.3%포인트가 제공된다. 이를 통해 MZ세대에 친숙한 이미지로 다가선다는 계획이다.
보험사는 즐겁게 소비하는 펀슈머(Fun+Consumer)인 MZ세대를 겨냥해 소비재 기업과의 협업에 나섰다. 7월 1일 출범한 신한라이프는 올해 하반기 맥주 브랜드 맥파이와 함께 ‘브라보 마이 신한라이프’ 맥주를 내놓고 다양한 ‘콜라보 굿즈’도 제작할 예정이다. 신한라이프 관계자는 “‘팬덤이 있는 보험사가 되겠다’고 밝힌 대로 젊은 세대 고객에게 친숙한 브랜드 이미지를 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신한생명은 오렌지라이프와 통합하기 전인 지난 2월 BGF리테일의 CU와 협업을 통해 생면 우동인 기획 상품 ‘신한생면’을 출시하기도 했다.
삼성생명은 지난 5월 이마트·롯데칠성과 협업해 생수 ‘삼성생명수(水)’를 출시했다. 친근하지만 신선한 브랜드로 고객에게 다가가기 위한 것이다.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물이라는 의미와 고객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생명보험업의 본질을 더해 제품명을 정했다.
카드사도 8비트 게임을 선보이고 아트페어를 주최하는 등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카드는 최근 홈페이지에 8비트 ‘위너스 게임’ 코너를 마련해 MZ세대 공략에 나섰고, 신한카드도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더 프리뷰 한남 위드 신한카드’를 개최했다. 최근 MZ세대가 홈 인테리어도 할 수 있고 추후 시세 차익도 기대할 수 있는 미술품 구입에 관심을 보이는 점에 주목했다. 6,000여 명이 방문했고 작품 판매액도 6억 원에 달했다.
김헌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기존 세대가 관계형 마케팅에 익숙해져 있다면 MZ세대는 상품의 비교 가능성을 중시하고 수익성·편의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기존 금융사들 중 MZ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스스로 플랫폼이 되려는 경우도 있는데, MZ세대들이 그 플랫폼에 자주 들어와 자유롭게 놀 수 있는지가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