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청소 회의에 드레스코드가 웬말”…숨진 서울대 노동자 동료의 증언

지난달 새 팀장 부임하며 각종 갑질 이어져 와

건물 준공 년도 등 시험 치고 동료에 점수 공개

코로나19로 배달량 늘어 업무 강도 가중 호소

“무늬만 정규직, 업무기강 아래 억압적 노무 관리”

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숨진 청소노동자 A씨의 동료들이 발언하고 있다./허진 기자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숨진 청소노동자 A씨의 동료들이 발언하고 있다./허진 기자




지난 달 26일 서울대 기숙사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청소노동자 A씨와 관련 유가족과 노조가 학교 측에 재발 방지와 공동 공동 산업재해 조사단 구성을 촉구했다.



7일 숨진 A씨 남편과 동료들,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 조합원들은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서울대 청소 노동자 조합원 사망 관련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주장했다.

A씨 남편 이모씨는 “(아내는) 기숙사 중 가장 어려운 925동에서 자식 같은 학생들이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도록 일했다”며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19로 쓰레기 양이 많아지는 등 업무량이 늘었지만 고된 1년 6개월의 시간 동안 학교 측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도리어 군대식으로 관리가 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저는 묻고 싶다. 학교 측에서 볼 때 근로자의 근무 태도에 잘못이 있다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학교 측의 지향이나 방향대로 진행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목소리르 높였다. 이씨는 기자 회견 이후 “이 일로 인해 (가해자를 포함해) 학교에서 근무하는 어느 누구도 퇴직 당하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그가 혼자 독단적으로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 차원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새 팀장 이후 이어진 악몽…건물 준공 년도 모르자 “감점하겠다”



망자의 동료들은 지난 달 1일 새로 부임한 안전관리 팀장이 들어온 이후 업무 강도와 노무 관리 압박이 강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팀장은 매주 수요일마다 청소 노동자 회의를 신설했는데 지난 9일 두번째 회의에서는 기숙사 건물의 준공 년도, 관악학생생활관을 한문이나 영어로 쓰게 하는 등 시험 문제를 내기도 했다. 다른 동료들 앞에서 시험 결과가 공개됐으며 일부 노동자는 수치심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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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은 회의에 올 때 드레스코드를 맞춰 입으라는 공지를 내리기도 했다. 남성 노동자들에게는 “정장 또는 남방에 멋진 구두를 신고 가장 멋진 모습으로 참석하시라”고 했으며 여성 노동자들에게는 “회의 자리에 맞게 최대한 멋진 모습으로 참석해 주시면 된다”고 알렸다. 이에 대해 한 노동자는 “근무 중이라 최대한 깔끔하게만 차려 입고 참석했지만 원하는 대로 하지 않았다고, 회의에 참석하면서 수첩과 펜을 들고 오지 않았다고 감점을 받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팀장은 청소 상태가 미진하다고 판단하거나 시험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 이같이 감점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새로 부임한 팀장이 청소노동자들에게 보낸 공지 메시지/민주노총 일반노조 제공새로 부임한 팀장이 청소노동자들에게 보낸 공지 메시지/민주노총 일반노조 제공


고인이 담당한 여학생 기숙사 925동은 지어진 지 오래돼 엘리베이터도 없는데다 건물 면적도 넓어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노동 강도가 높은 것으로 이름 난 건물이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학생들의 외출이 제한되면서 늘어난 배달 음식으로 인한 쓰레기 양까지 늘어 평소 고인은 주변 동료들에게 어려움을 호소해왔다. 김선기 민주노총 일반노조 교선실장은 “고인이 청소를 맡은 건물은 아무리 청소를 해도 티가 잘 안나는 노후화된 건물이었다”며 “샤워실도 많은데 여기가 제일 청소 어려웠다고 했다”고 말했다.

무늬만 정규직…업무 기강이란 이름의 갑질


정성훈 민주노총 일반노조 서울대시설분회장은 되레 정규직화 된 이후 근무 환경이 악화됐다고 호소했다. 그는 “문 대통령 이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는데 그 다음부터 문제가 됐다”며 “무늬만 정규직이 된 이후 근무 기강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모욕적 상황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 캠퍼스 연관된 직원들이 듣고 있는데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돼 좋아진 점보다 되레 열악한 환경이 조성된 경우가 더 많다”고 호소했다.

김이회 민주노총 일반노조 공동위원장은 “2년 전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는 이 자리에서 같은 노동자를 보냈다. 그러고나서 학교는 그나마 에어컨도 달고 창도 내고 약간의 변화가 있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다”며 “노동자 대하는 태도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저 에어컨 하나 놔주는 그러면 문제 끝나는 것으로 판단한 듯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학교 측에 진상조사를 요구한다”며 “그것은 총장의 의무사항이다. 다신 이런 일 일어나지 않도록, 사망 노동자가 산재 보험을 신청할 수 있도록 노조와 공동 조사단을 구성해달라”고 촉구했다.

A씨는 지난달 26일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A씨 가족은 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A씨가 귀가하지 않고 연락도 안 되자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관계자는 "자살이나 타살 혐의점은 보이지 않는다"며 "과로사인지 등 여부는 (학교 측에서)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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