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계와 노동계가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시행령 제정안에 대해 미흡하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경영계는 경영자의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해 달라는 요구가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아 현장에서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노동계도 과로사의 원인 질환과 2인 1조 업무가 빠져 중대재해법 입법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법이 보완 입법 없이 이대로 시행될 경우 결국 산업 현장에서 갈등만 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9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중대재해법 시행령 제정안을 발표했다. 중대 산업재해 중 직업성 질병 24가지를 유형화하고, 중대 시민 재해의 공중 이용 시설 범위를 정했다. 실내공기질법상 다중 이용 시설 대부분이 적용된다. 제정안은 또 300인 이상 사업장의 안전보건 인력 배치 등 안전보건 확보 의무 사항을 명시했다. 제정안은 12일 입법 예고돼 40일간 의견을 수렴한다.
명확하지 않은 경영 책임자의 의무를 제정안에서 구체화해 달라고 요구해온 경영계는 허탈하다는 반응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논평에서 “제정안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며 “많은 부분이 불분명확해 어느 수준까지 안전 의무를 다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경영계의 대표적인 우려는 질병의 심각한 정도를 규정하는 중증도가 빠졌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경미한 질병까지 중대 산업재해로 적용해야 할지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제정안에서 기업이 어느 수준으로 안전보건 관리 체계를 확보해야 하는지도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고용노동부 안전 감독의 중요 항목은 안전보건 예산을 얼마나 썼는지다. 예를 들어 매출액과 비교해 안전보건 예산의 적정성을 지적해왔지만 제정안에는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투자해야 하는지가 담기지 않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이날 입장문에서 “중대 재해의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져 기업인들에 대한 과잉 처벌이 될 수 있다”며 “경영 책임자뿐만 아니라 현장 종사자의 안전 의무 준수도 중요한데 이에 대한 규정이 없는 것도 아쉽다”고 지적했다. 박재근 대한상공회의 산업조사본부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자체가 재해의 근원적 예방보다 처벌에 중점을 두고 있어 시행령으로 이를 보완하는 데는 애초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도 제정안에 대해 불만이 높다. 한국노총은 이날 논평에서 ‘솜방망이 시행령 같다’고까지 지적했다. 노동계가 비판하는 지점은 뇌·심혈관계 질환, 근골격 질환 등 과로사의 원인인 만성질환이 빠졌다는 점이다. 위험 작업의 2인 1조 업무가 빠진 점도 노동계는 강하게 비판했다. 그동안 근로자 사망 산재를 보면 대부분 작업자가 혼자 일하다가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중대 시민 재해에서 최근 광주 철거 사고로 관심이 높아진 건설·철거 현장이 빠졌다는 점도 노동계가 제정안의 한계로 지적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