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로터리] 이더리움도 증권법 처분 받아야할까

김형중 고려대 특임교수 /사진=서울경제DB김형중 고려대 특임교수 /사진=서울경제DB




분명히 주식회사인데 대표이사, 임원, 직원이 없는 회사가 있다. 사무실이나 전화번호도 없다. 정관은 스마트 컨트랙트라는 프로그램에 담겨있다. 대면 회의가 없으며 모든 결정은 투명하게 프로토콜에 따라 내려진다.

꿈 같은 얘기가 아니다. 이런 형태의 무인(無人) 기업이 특히 금융 분야에서 많이 늘어나고 있다. 유니스왑이나 아베, 컴파운드와 같은 해외 기업과 ‘카카오 코인’으로 알려진 클레이튼 기반의 클레이스왑 등이 있다. 이른바 분산자율조직(DAO)다. 권한이 DAO 코인을 보유한 홀더들에게 분산돼 있으며, 회사가 아닌 실질적인 회사이기에 그렇게 부른다.



DAO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헌신이 필요하다. 보통의 벤처기업과 다르지 않다. 창업자는 우선 회사를 만들고 코인을 팔아 자금을 모을 수밖에 없다. 텔레그램이 천문학적인 자금을 모아 착수했던 코인 프로젝트 ‘톤(TON)’이 대표적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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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이때 팔리는 코인을 무등록증권으로 본다. 무등록증권을 사고파는 행위는 증권법에 저촉돼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근거는 1946년 대법원 판례인 ‘하우이(Howey) 테스트’다. 이 때문에 실제로 톤 프로젝트는 무산 위기에 놓여 있다.

헌데 미국 감독당국의 선택은 처벌이었을까. 아니었다. SEC의 헤스터 피어스 위원(Commissioner)은 가능성에 주목했다. 지난해 2월 그가 제안한 것은 3년간의 유예였다. 3년 안에 창업자의 회사를 DAO로 만들라는 게 핵심 내용이다. DAO가 되면 창업자가 팔았던 코인은 증권이 아닌 상품이 되므로 증권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DAO로 바꾸지 못하면 그 프로젝트의 코인은 영락없는 증권이므로 SEC에 등록한 뒤, 증권법의 처분을 받아야 한다.

이더리움을 만든 비탈리 뷰테린도 증권법으로 SEC가 처벌할 수 있었다. 메인넷을 만들겠다며 미리 코인을 팔았으니 미등록증권을 판 거다. 헌데 지금 이더리움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분산자율조직처럼 운영되고 있다. 이더리움은 코인 시장에서 사회간접자본(SOC) 같은 지위를 확보했다. 수많은 토큰 프로젝트가 이더리움 메인넷 위에서 돌아가고 있다. 이더리움은 분산금융의 산실이다.

미국의 위대함은 규제기관조차 미래 산업의 싹을 자르지 않고 키워주는 안목에 있다. 그런데 “김치코인은 다 나쁜 것”이라며 국내 벤처기업을 향해 서슬 퍼런 칼을 들이대는 규제기관을 보면 한국 산업의 앞날이 암울하다.

4차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정부가 거창한 구호를 외친다. 하지만 미래의 많은 기업이 분산자율조직 형태를 띨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금융산업을 환골탈태 시킬 분산자율조직이 잘 자라도록 제도를 준비해야 한다.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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