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눅눅한 공포'의 대물림, 믿음에 관한 찝찝함이…

■14일 개봉 영화 ‘랑종’

'곡성' 나홍진 시나리오 토대로

'셔터' 등의 반종 감독이 메가폰

페이크 다큐 설정, 신내림 관찰

습한 泰와 시너지, 공포감 압도

영화 ‘랑종’ 스틸 컷. /사진 제공=쇼박스영화 ‘랑종’ 스틸 컷. /사진 제공=쇼박스




‘셔터’ ‘샴’ 등으로 태국 호러영화를 세계에 알린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곡성’으로 관객들의 머릿속에 ‘눅눅한 공포’의 여운을 남긴 나홍진 감독과 만나면 어떤 영화가 나올까. 답은 바로 오는 14일 개봉하는 ‘랑종’이다. 영화는 실제 할 법한 리얼리티와 스산한 분위기로 시작해 후반부 폭주하는 공포감으로 관객을 옥죄면서 ‘우리가 믿는 것들의 진실성’에 관한 묵직한 질문을 ‘곡성’에 이어 또 한번 던진다.




영화 ‘랑종’의 한 장면. /사진 제공=쇼박스영화 ‘랑종’의 한 장면. /사진 제공=쇼박스


‘랑종’은 태국어로 무당이라는 뜻이다. 영화는 태국 북동부 이산 지역의 산골 마을에서 대를 이어 조상 신(神)인 바얀을 모시는 랑종인 님(싸와니 우툼마 분)이 조카 밍(나릴야 군몽콘켓 분)의 심상치 않은 상태를 감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당초 이산 지역의 무속 신앙을 취재하던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님을 만났다는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 설정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밍이 신내림 받는 순간을 포착하고자 님과 밍, 가족들에게 벌어진 미스터리한 현상을 촬영하기 시작한다.

나 감독이 쓴 시나리오 원안을 토대로 반종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나 감독은 프로듀서를 맡아 제작 전반에 참여했다. 나 감독은 언론 시사회에서 “영화 ‘곡성’ 속 무당의 전사(前史)를 다른 장소, 캐릭터로 새롭게 만들고자 한 게 출발이었다”며 “비록 코로나19 때문에 나 감독은 태국 현지에 갈 수는 없었지만 매일 촬영분을 온라인 상으로 확인하며 심도 있는 논의를 벌였다"고 말했다.

영화 ‘랑종’에서 무당인 주인공 님이 의식을 벌이는 장면. /사진 제공=쇼박스영화 ‘랑종’에서 무당인 주인공 님이 의식을 벌이는 장면. /사진 제공=쇼박스



나 감독은 “‘곡성’과 흡사해지는 걸 원치 않았다”고 강조했지만, 무속 신앙과 빙의, 퇴마라는 중심 소재를 공유하고 있는 만큼 전반적 이야기 구조부터 다소 비슷한 면이 있다. 극중 밍이 빙의 된 이후 보여주는 난폭함은 “뭣이 중한디?”라고 외치던 ‘곡성’ 속 효진(김환희 분)이 나이를 먹었다면 했을 법한 행동이다. 님과 밍, 주변인들이 자기 자신조차 의심하면서 벌어지는 일들도 ‘곡성’을 떠올리게 만든다.



스산하면서도 눅눅한 분위기, 인물들이 초자연적 존재에 의해 휘둘리면서 느끼는 무력감으로 공포를 자아내는 전개도 비슷하다.

영화 ‘랑종’의 한 장면. /사진 제공=쇼박스영화 ‘랑종’의 한 장면. /사진 제공=쇼박스


하지만 ‘랑종’에서는 태국의 습하고 더운 날씨를 닮은 듯 눅눅하고 음산한 분위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는 암울한 상황과 만나 엄청난 시너지를 낸다. 또 ‘랑종’은 하나의 이야기를 직선적으로 몰고 가기 때문에 나 감독의 ‘곡성’보다는 좀 더 대중적인 공포 영화에 가깝다. 극중 밍이 이상 증세를 보이는 데서 시작해 원인을 찾으려 동분서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집중하면 어렵지 않게 스토리를 쫓아갈 수 있다. ‘곡성’이 개봉 당시 ‘현혹되지 말라’는 헤드 카피와 대조적으로 곳곳에 현란한 상징을 숨기며 관객과 일종의 두뇌게임을 벌였던 것과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공포감을 담아내는 연출은 보는 사람을 옥죈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곡성’보다 훨씬 강력하다. 전반부에서 다소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리얼리티를 쌓아올린 뒤 후반부 1시간 동안 전력 질주하는 공포는 매우 압도적이다. 밍의 집에 설치한 관찰 카메라가 포착한 기이한 장면들, 막판 퇴마 의식의 연출은 긴장감이 넘친다. 반종 감독과 나 감독은 리얼리티를 살리고자 유명 배우 대신 연극배우 중 실력자를 캐스팅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고, 이들 모두 좋은 연기를 펼친다. 또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영화 대부분을 핸드헬드 카메라로 찍은 덕분에 촬영팀이 느끼는 공포가 흔들리는 카메라 각도와 함께 그대로 전해진다.

표현 수위도 매우 높다. 거의 모든 금기에 도전하는 수준이다. 반종 감독은 “굳이 높은 수위를 바란 건 아니다”면서도 “시나리오 원안과 태국의 무속인 조사 등으로 접한 내용을 종합해서 꼭 필요한 장면만 들어간 수준”이라고 말했다.

영화 ‘랑종’의 클라이맥스인 퇴마의식 한 장면. /사진 제공=쇼박스영화 ‘랑종’의 클라이맥스인 퇴마의식 한 장면. /사진 제공=쇼박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랑종’은 마지막에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정확하게 ‘곡성’과 공유한다. 반종 감독은 “기존의 공포영화처럼 공포만 주기보다 관객에게 본인이 아는 것, 믿어온 것들과 악이나 원죄, 신앙이나 믿음 등에 의구심을 갖고 생각할 기회를 주는 걸 목표로 했다”고 설명했다. ‘곡성’에서 주인공은 어느 것 하나 명확하지 않은 주변 상황 속에서 끊임 없이 믿음을 의심하고 저버리기도 한다. ‘랑종’을 끝까지 보고 난 관객들도 ‘스스로 믿는 것들이 과연 진실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영화 ‘랑종’의 한 장면. /사진 제공=쇼박스영화 ‘랑종’의 한 장면. /사진 제공=쇼박스


박준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