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빼려고 헬스클럽에 오는 건데 뛸 수도 없는 러닝머신을 누가 타겠어요. 당분간 회원권을 정지해야겠네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수도권에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가 처음 시행된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헬스클럽에서 만난 50대 주부 최 모 씨는 러닝머신 위에서 빠르게 걷기만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불만을 쏟아냈다. 거리 두기 4단계 조치에 따라 이날부터 수도권 실내 체육 시설에서는 러닝머신의 최대 속도가 시속 6㎞로 제한된다. 또 에어로빅이나 스피닝 등 단체 운동 시 사용되는 음악의 속도 역시 120bpm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인지 이 같은 사실을 모른 채 헬스클럽을 찾았던 적지 않은 회원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또 다른 한 회원은 “러닝머신 위를 걸을 바에야 차라리 퇴근하고 한강공원을 뛰는 게 낫겠다”며 웨이트기구에 자리를 잡았다.
헬스클럽을 운영하는 정 모(37) 씨는 “회원권을 환불하거나 정지하고 싶다는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며 “강화된 방역 조치에 따른 모든 피해를 우리가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실제로 수도권 거리 두기 4단계 적용 방침이 발표된 지난 9일 이후 대다수 실내 체육 시설들은 고객들에게 회원권 연장과 환불 안내 문자를 발송했고 상당수 회원들은 환불하거나 회원권 사용을 정지시켰다.
서울 구로구에서 헬스트레이너로 일하는 이 모(28) 씨는 “계단을 오르는 효과를 지닌 ‘스테퍼’나 ‘사이클’ 같은 유산소 기구는 그대로 놔둔 채 러닝머신 속도만 제한하는 게 무슨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어떠한 기준으로 방역 대책을 세웠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조깅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이번 방역 조치로 유산소운동을 하려는 시민들이 한강공원으로 몰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와 예식장도 혼란을 피하지 못했다. 거리 두기 4단계가 적용되면서 결혼식이나 장례식은 8촌 이내 혈족과 4촌 이내 인척 등 친족만 최대 49명까지 참석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친구나 직장 동료 등은 참석하지 못한 채 결혼식을 치러야 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서울 주요 웨딩 업체에는 지난주 말부터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의 예식 연기 문의가 쇄도했다. 서울 광화문의 한 예식장 관계자는 “당초 7월로 예정된 예식의 절반 이상이 연기됐다”며 “당장 2주 뒤에 거리 두기 4단계가 또다시 연장될 수도 있으니 아예 9월 이후로 미루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다만 지난해 예정이던 결혼식을 올해로 이미 한 차례 연기했던 한 예비부부는 오는 17일 가족들만 참석한 채 ‘스몰웨딩’으로 치르기로 했다. 예비신부 김 모(32) 씨는 “또다시 예식을 미루는 게 친지들이나 지인들에게도 모두 민폐인 것 같다”며 “코로나19로 방역 대책이 수시로 변하면서 그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왔는데 이제는 얼른 결혼식을 마무리하고 싶은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결혼식과 관련한 보다 명확한 방역 지침이 마련되지 않은 점도 예비부부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실제로 지난주 말부터 결혼 정보를 공유하는 한 온라인 카페에는 주례나 사회자·사진작가 등도 참석 가능한 49명에 포함되는지를 묻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친족만 조문이 가능해진 서울의 장례식장도 한적한 모습이었다. 과거 같으면 점심시간을 이용해 유족의 동료나 지인들이 조문을 왔겠지만 이날 찾은 서울 강북의 주요 장례식장들은 조문객 대신 근조 화환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분향소와 식사를 하는 곳 역시 대부분 텅 비어 있었고 유족들만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