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서울 용산고등학교. 정규 수업이 없는 토요일인데도 학생들이 하나둘씩 과학실에 모였다. 평소 즐겨보는 영화의 전반을 이해하는 특별한 강좌가 열렸기 때문이다. 용산도서관이 지역 청소년의 인문학 사고를 높이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강의는 김윤아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가 맡았다.
김 교수는 “영화가 모차르트의 음악이나 고흐의 그림과 다른 점은 ‘산업’이라는 점”이라며 “1조원을 투자해 만든 영화 ‘아바타’가 4조원 이상의 수익을 내고 있는 것 같이 영화는 대규모의 자본이 움직이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영화는 생산하는 사람(스태프)과 소비하는 사람(관객)의 수준이 통했을 때 흥행에 성공한다”며 영화 ‘부산행’을 예를 들어 설명했다.
부산행의 제작 당시 좀비영화는 한국인의 정서와 맞지 않아 성공하기 어렵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예상과는 달리 부산행은 1,000만명 이상의 관객몰이로 흥행에 성공했다. 그 이유에 대해 김 교수는 “부산행은 가족에 대한 정서를 좀비를 통해 이끌어 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서로 물고 뜯는 무한경쟁 사회의 이기적인 모습을 좀비로 상징화해 표현했다”며 “치열한 사회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는 가족에게 있다는 결론이 한국인의 정서와 맞아 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예술이면서 산업적인 특성을 갖는 영화는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 사회의 특성을 반영하고 재현할 수밖에 없다”며 “영화를 볼 때 이런 내용의 영화가 왜 만들어졌는지 흥행에 성공하거나 그렇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면 사회와 연결된 많은 의미들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김 교수는 영화제작을 구성하는 다양한 직업군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으로 학생들의 진로 탐색에도 도움을 줬다. 그는 “영화는 감독 혼자의 힘으로는 만들 수 없는 것”이라며 “시나리오, 음악, 홍보, 영상, 편집 등 많은 분야에서 수백 명에 달하는 스태프들이 함께 만든 합작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예전과는 달리 여러분은 다양한 직업군을 경험하게 될 세대”라며 “상상력과 독창성, 담대한 도전 정신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용산도서관이 마련한 김 교수의 ‘호모 시네마쿠스로 살아보기’ 강좌는 ‘고인돌2.0(고전·인문아카데미2.0: 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의 프로그램의 하나로 개최됐다. ‘고인돌2.0’은 서울경제신문 부설 백상경제연구원과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및 평생학습관이 2013년부터 함께한 인문학 교육 사업이다. 성인 중심의 인문학 강좌로 시작한 ‘고인돌’은 지난해부터 명칭을 ‘고인돌2.0’으로 바꾸고 서울 전역의 중·고등학교와 연계해 강연을 하고 있다. 역사와 건축, 경제, 과학,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의 총 56개 강좌로 구성된 올해 제9기 ‘고인돌2.0’은 특히 교과목과의 연계성을 높여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원격 강의 등 비대면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용산고 1학년 이재하 군은 “재미있게 보고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영화에 대해 다양한 방면의 생각할 거리를 알게 돼 유익했다”고 강의에 참여한 소감을 밝혔다. 1학년 이지우 군은 “앞으로 영화를 볼 때는 문화와 사회의 연결고리에 대해 깊게 생각해 봐야겠다”고 말했다.
전혜림 용산고 생명과학 교사는 “해당강좌를 통해 학생들이 배운 전문 지식을 영화를 직접 제작하는 체험활동으로 연결해 가겠다”고 말했다.
고인돌 2.0은 올 11월까지 80여개 중·고등학교를 찾아가 청소년들의 인문학의 사고를 높이기 위한 강연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 이효정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원 hj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