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 '적법의 가면' 쓴 검열의 민낯

■검열관들 -로버트 단턴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사회·문화가 발전 거듭할수록

출판·보도·영화 등 검열 확대

18~20세기 역사적 사례 들어

권력 정당성 앞세운 통제 분석

'표현의 자유' 침해 대응법 모색





검열은 어떤 행위나 사업 등을 살펴 조사하는 일을 뜻한다. 검열은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행태로 이뤄진다. 목적은 통제다. 특히 최상위 권력자나 국가가 검열의 주체가 될 경우 검열은 매우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이뤄진다. 이들의 주된 검열 대상은 언론이나 출판, 보도, 연극, 영화, 우편물 등이다. 내용을 사전에 심사해 권력에 부정적 영향이 있다고 판단되면 이리저리 뜯어 고치거나 아예 발표되지 못하게 미리 틀어 막는다. 역사적으로 보면 검열 과정에서 폭력도 자주 사용됐다. 눈엣가시 같은 작품을 쓰거나 출판했다는 이유로 공개 장소에서 모욕을 당하거나 쇠붙이로 낙인이 찍히고, 감금을 당하거나 목숨마저 빼앗기는 사례가 빈번했다.






21세기가 된 지금 이 순간에도 권력에 의한 검열은 작동하고 있다.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 사건이나 2021년 미얀마 언론 출판 탄압이 대표적이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의 이면에서 새로운 판을 짜는 방식으로 암암리에 진행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검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세계적인 스테디셀러 ‘고양이 대학살’의 저자인 로버트 단턴이 저서 ‘검열관들 : 국가는 어떻게 출판을 통제해 왔는가’를 통해 검열의 역사와 본질을 살펴봤다. 저자는 18세기 부르봉 왕조의 프랑스, 19세기 영국 통치 하의 인도, 20세기 공산주의 동독 등 크게 세 가지 사례를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물론 단턴의 조사·연구에는 한계가 있다. 검열은 그 특성상 드러나지 않게 진행되고, 기록으로 잘 남겨지지 않는 탓이다. 하지만 그는 수년에 걸쳐 바스티유 기록 보관소, 영국 국립 보관소 등의 아카이브를 샅샅이 들여다보고, 전직 검열관들과 인터뷰를 하는 방식으로 관련 자료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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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따르면 검열은 시대가 흐를수록 난폭한 방식으로 변해 왔다. 18세기 프랑스 부르봉 왕조 당시의 검열은 통제보다 출판물 품질 관리에 가까웠다. 검열관들의 책에 대한 평가는 서평에 가까웠고, 때로는 검열 결과가 하나의 작품이나 다름 없기도 했다. 당시 검열관들은 작가와 비슷한 직군에 속해있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교수나 학자, 성직자, 관료 또는 같은 작가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 검열은 일종의 부업이었다. 이들의 업무는 주로 책의 가독성과 문체와 같은 작품성을 점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책에 대한 호평으로 가득한 검열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처럼 18세기 프랑스의 검열이 양질의 도서에 특허를 주는 형식이었다면, 19세기 영국령 인도에서의 검열은 식민지에 대한 전방위적 통제와 감시 기반을 닦는 일이었다. 세포이 항쟁에 놀란 영국인들은 인도에 관한 방대한 정보 수집을 위해 지역 관리와 도서관 사서 등을 동원해 도서 목록을 정리하고 의견을 남기도록 했다. 원칙적으로는 출판의 자유가 있었지만 검열은 혹독했고, 무엇보다 제국의 식민지 통치에 위해가 된다고 판단됐을 경우 혹독한 제재가 뒤따랐다. 물론 표면 상으로는 늘 적법한 절차를 밟는 듯 포장됐지만 말이다.

20세기 공산주의 동독의 검열 체제는 출판 전 과정에서 치밀하게 이뤄졌다. 출판총국이 연간 출판 계획을 세워 동독 내 모든 출판물의 종수부터 분야, 내용까지 사전에 결정했다. 작가는 편집자와 원고 기획과 집필 방향까지 타협해야 했다. 당시 같은 처지에 있었던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는 “검열의 방법이나 용어가 아무리 조심스럽다 하더라도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이 세기의 수치”라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타협을 거부하기도 했다.



저자는 출판 과정에서 수많은 협력과 협상이 이뤄지는 과정이 전부 그릇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검열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권력이 남용된다면 이는 정당화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원고를 건드리거나 폐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 체제 전반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저자는 과거 검열 사례를 분석했지만 그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현 시대의 검열이다. 역사적으로 정책 입안자들이 권력에 대한 위협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고, 어떤 식으로 검열을 정당화했는지 알아야만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도 힘의 남용에 대처하는 방안을 찾아낼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무엇보다 어느 시대, 어떤 지역에서든 검열은 ‘적법’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2만2,000원.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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