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는 오랫동안 인간에게 혐오의 대상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더럽고 천하다고 여겨겼다. 어떤 이는 ‘진흙에서 태어난 악마의 짐승’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나뭇가지를 감싸고 있는 고치를 발견하면 그것을 떼어내 안에 있는 ‘해충’을 발로 짓밟았다. 이후 무엇이 될 지는 생각하지도 않은 채 말이다. 하지만 열세 살 스위스 소녀의 눈에는 신비로운 생명체로 보였다. 벌레에게도 특별한 생명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생각한 소녀는 흙 속에서 기어 나오는 벌레의 움직임을 관찰했고, 갈색 고치의 쪼글쪼글한 겉면을 살폈다. 애벌레의 말랑말랑한 초록색 몸뚱이, 딱정벌레의 반들반들한 등 껍질, 나비의 우아한 날개 등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며 스케치를 하고 색칠을 했다. 그러면서 생각은 애벌레와 고치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데에 이르렀다. 벌레에 관심을 보이다가 마녀로 몰려 교수형에 처해졌다는 이웃 마을 사람의 흉흉한 이야기에도 소녀의 호기심은 나날이 커졌다. 17세기 스위스의 박물학자이자 예술가, 생태학자인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신간 ‘나비를 그린 소녀’는 세계 최초의 여성 곤충학자인 메리안의 일생을 다룬 논픽션이다. 뉴베리상 수상 작가인 조이스 시드먼이 사회적 관습을 깨고 최초의 여성 곤충학자로 자리매김한 메리안의 곤충에 대한 열정을 아름답게 그려냈다.
메리안은 남성 중심의 곤충학계와 미술계 모두에서 인정받지 못한 여성이지만 곤충을 사랑한 과학 예술계의 선구자다.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곤충학자 파브르보다 100년이나 앞서 나비의 변이를 기록했고, 186종에 달하는 곤충의 생애 주기를 그림으로 그려 기록했다.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동물과 곤충들을 발견했고, 그 당시 남자들에게만 허락됐던 과학적 탐험을 떠나기도 했다.
“이 작고 보잘 것 없는 벌레들은 재능을 타고 났는데, 그건 어떤 면에서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자신들의 일정표를 착실히 따른다는 점에서, 먹이를 찾는 법을 알기 전까지는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며 미세한 변화까지 포착했던 메리안의 나비와 나방 분류법은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책은 메리안의 이야기와 함께 메리안이 직접 그린 그림, 해당 곤충 사진까지 함께 보여준다. 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