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기·벤처

[동십자각]최저임금 만 원의 행복, 생존 그리고 절망

연승 성장기업부 차장





1만 원으로 1주일을 살 수 있을까. 18년 전에 스타들이 예능에 나와 이에 도전한 적이 있다. ‘행복주식회사’라는 프로그램의 ‘만 원의 행복’ 코너에서 스타들은 ‘짠내’ 나는 ‘1만 원으로 1주일 버티기’를 보여줘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리고 이 예능은 무려 5년 동안이나 방송됐다. ‘하루에 1만 원으로도 살기 어려운데 1주일?’이라며 비현실적인 설정에도 시청자들을 불러 모은 것은 10원, 100원이라도 깎아보려고 가게 주인에게 사정을 하고 걸어 다니는 스타들의 모습에 자신이 오버랩됐기 때문일 것이다. 1만 원의 가치를 심각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던 때 기자도 돈을 10원 등 최소 단위로 쪼개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고 10원 때문에 무엇을 할 수 없게 되는지를 보면서 안타까워했기에 기억에 남는 예능이다.



그리고 18년이 지난 2021년 다시 ‘만 원의 행복'을 생각한다. 아니, 이제는 ‘만 원의 행복'이 아닌 ‘만 원의 생존과 절망'을 떠올린다. 최근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5.1% 오른 9,160원으로 결정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최저임금 1만 원 시대’는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애초에 시행하기 어려웠던 공약이었을 수도 있고 코로나19로 지켜지지 못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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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소상공인·편의점주를 비롯해 중소기업들은 동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실망했다. 그리고 최저임금 1만 원을 기대했던 근로자들은 절망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협상은 없고 임금 협상은 더욱 그렇다. 올해보다 5.1% 늘어난 액수는 440원이다. 440원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했다. 떠오르는 게 없을 만큼 물가는 올랐다. ‘동전주’ 투자 정도가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데 임금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10원, 100원에 사업자와 근로자 모두의 생존이 달려 있고 행복과 절망이 교차한다. 코로나19로 가장 타격을 많이 받았고 시급에 가장 민감한 소상공인과 편의점주 중에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내년에는 직원들을 내보내고 키오스크를 들여놓아 무인 점포로 운영하겠다는 이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시급자들은 임금은 오르겠지만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두려워한다.

어쩌면 21세기 ‘러다이트 운동(1811~17년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자 영국의 중·북부 직물공업 지대 노동자들이 기계를 파괴한 일)'이 재연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대체한 키오스크를 부수는 계산원들. 기술 발전과 불황·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등 경제 사회 상황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도 하지만 없애기도 한다. 이미 제러미 리프킨은 1996년 그의 저서 ‘노동의 종말’에서 노동의 절망적인 미래를 예고했고 이것이 새삼 놀랍지도 않은 게 사실이다. 지식 노동자뿐 아니라 저숙련 노동자의 일자리도 25년 동안 무수히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계산원을 비롯한 저숙련 일자리는 남아 있고 또 필요하다. 14일 문 대통령은 ‘휴먼 뉴딜’을 발표했는데 사라질 일자리에 종사하는 이들에 대한 지원책은 부족하다. 440원에 생존이 달린 이들의 수가 적어서일까. 선거를 앞둔 정권의 선택은 이처럼 또 한번 절망을 남겼다. 그리고 ‘샐러드 케이스 바꾼 거 어때요’ '오늘은 이게 맛있어요’ ‘손 베니까 조심해요’라고 말을 건네는 마트 아주머니들이 키오스크로 대체되는 상상을 하면 왠지 쓸쓸하다.

연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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