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4년 전 폐업…종적 감춘 '37억 임금체불' 병원

지난달 고용부 체불 사업주 공개시효 만료

공개제도 도입 이래 최대 금액…행방 묘연

코로나·최저임금 인상 탓 체불 증가 우려

윤준병 “임금체불, 노동 현장 고질적 문제”

사진은 내용과 무관함./이미지투데이사진은 내용과 무관함./이미지투데이




근로자 120여명에게 임금 37억원을 지급하지 않은 대구 한 병원의 행방이 묘연하다. 현재 정부 시스템으로는 이 병원이 근로자에게 밀린 임금을 지급했는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1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대구 A 병원은 지난 달 임금체불 사업주 공개 명단에서 제외됐다. 고용부는 2013년부터 1년 이내 3,000만원 이상을 체불한 사업주와 사업장의 명단을 3년간 공개하고 있다. A 병원은 6월부로 3년 공개 시효가 만료돼 실명이 공개되지 않는다.

A 병원의 임금 체불액 37억원은 명단 공개제도 도입 이래 최대 규모다. 금액도 억 단위로 추정되는 공개 사업주 평균치를 훨씬 웃돈다. 실제로 고용부가 2019년 고액 임금체불 사업주 242명의 명단을 공개할 당시 3억원이 넘는 곳은 5곳 뿐이었다.



하지만 현재 A 병원이 밀린 임금을 지급했는지 여부는 고용부 행정시스템으로 확인할 수 없다. 고용부는 확인 권한이 없어서다. 고용부는 임금을 ‘모두 지급했으니 명단에서 빼달라’는 요청이 있을 때만 지급 여부를 확인하고 명단에서 제외하고 있다.

관련기사



A 병원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확인한 결과 2017년 이미 폐업을 한 상황이다. 이 병원 사업주가 개업했던 동일한 사명이 들어간 병원도 2013년 문을 닫았다. 2017년 다시 연 병원도 폐업한 것이다. A 병원이 있던 자리에는 B 병원이 개업했다. 당시 직원을 찾을 수 없다. B 병원 관계자는 “몇년 전 병원 건물이 시장에 나와 전세계약을 했다”며 “이전 병원과는 우리 병원과 아무런 관계가 없고 일하던 직원들도 없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임금 체불이 적지 않은 상황은 눈여겨 볼 점이다. 2019년 고용부의 임금 체불 사업주 조사에서 체불 규모 상위 기업 5곳 중 2곳이 병원이었다. 당시 서울 C 병원의 임금 체불 규모는 9억 원이다. 이 병원은 현재도 임금 체불 명단에 포함됐다. D병원 관계자는 “예전에는 의사 면허만 있으면 대출 받기 쉬웠다”며 “2억 원만 있으면 10억~20 억 원은 융통할 수 있다는 말이 돌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남의 돈(대출)로 사업을 하다 보니 자금이 막히면 경영이 어려워지는 속도도 빠르다”며 “보통 작은 병원은 사업 경험이 없는 의사가 직접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우려는 코로나 19로 경기 회복이 더뎌지면서 경영난으로 인한 임금 체불 사업주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내년 최저임금도 올해 보다 5.1% 올라 경영이 더 힘들어질 것이란 목소리도 중소기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임금 체불을 차단하기 위한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국회에서도 나온다. 현재 임금 체불 사업주는 명단 공개와 7년 간 신용 제재를 받지만, A병원처럼 폐업을 하면 법인에 대한 신용 제재는 무용지물이 된다. 게다가 대출길을 막는 신용 제재는 기업이 임금 체불을 스스로 해결할 능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있다. 고용부가 폐업으로 임금이 밀린 사업장을 돕는 소액체당금제도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대신 임금을 지원해주기 때문에 근로자 입장에서 반길 일이지만, 일부 사업주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상습적인 임금 체불 사업주에 체불임금 3배를 청구할 수 있는 법안과 임금 체불 사업주(명단 공개 대상자)에 대한 근로감독이 가능한 법안을 발의했다. 윤 의원은 “노동 현장의 고질적인 문제는 임금 체불”이라며 “근로자는 당장 생계를 해결해야 하다보니, 사업주와 체불 원금에도 못 미치는 금액으로 합의하는 일이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양종곤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