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로터리] '디지털 월스트리트'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김형중 고려대 특임교수





지난 2017년 기업용 블록체인 벤처기업 심바이온트의 회장인 케이틀린 롱은 모교인 미국 와이오밍대에 비트코인을 기부하려 했다. 롱은 살로몬브러더스·크레디트스위스·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에서 22년간 경험을 쌓고 2016년 월스트리트를 떠났다. 이후 2018년까지 심바이온트 회장으로 일했다. 그런데 이 대학은 롱의 기부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와이오밍주(州)의 은행법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법을 탓하는 대신 와이오밍주의 법을 바꾸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가 법을 바꾼 결과는 어땠을까. 암호화폐거래소 크라켄을 비롯해 블록체인 플랫폼 카르다노, 지불 프로토콜 회사 리플랩스 등이 와이오밍에 주목했다. 카르다노의 개발사인 IOHK가 하버드나 매사추세츠공과대(MIT)·코넬 등 명문대가 아닌 와이오밍대 블록체인 랩에 130만 달러 상당의 카르다노를 기증했다. 리플도 와이오밍에 자회사를 설립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와이오밍은 2019년 입법을 통해 특수목적예금기관(SPDI) 설립 근거도 마련했다. 디지털 자산을 취급하는 SPDI는 대출을 뺀 예금 업무, 신탁 자산 관리 등의 영업을 할 수 있다. 지난해 9월 크라켄이 전액 출자한 크라켄은행이 첫 인가를 받았다. 한 달 후 아반티은행이, 올해 6월에는 WDT가 인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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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7월에는 아메리칸크립토페드라는 분산자율조직(DAO)도 승인됐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헤스터 피어스가 제안한 중재안이 성공의 이유였다.

와이오밍은 미국의 ‘디지털월스트리트’로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일자리가 얼마나 늘지 아직은 추정하기 어렵다. 와이오밍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스위스의 크립토밸리는 성과가 상당하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 따르면 올 2월까지 크립토밸리의 관련 기업 수는 960개이고 이로 인해 5,184명의 고용이 이뤄졌다. 이더리움·카르다노·폴카닷 등 유니콘 기업이 11개나 된다. 이미 텍사스주 등이 와이오밍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눈을 국내로 돌려보자. 부산이 블록체인 특구로 지정됐다지만 ‘특구다움’을 체감할 수 없다. 부산시 의회가 지난해 겨우 블록체인 전문 인력 양성, 활용 분야 발굴 및 기술 지원, 민관 협력 체계 구성 등을 골자로 한 조례를 만들었을 뿐이다. 특구 사업에 정부 예산이 투입됐기 때문에 오히려 암호화폐의 ‘암’자도 꺼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예산 따먹기식 사업으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금융위원회는 미국 SEC처럼 중재안을 낼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칼자루를 쥐고 암호화폐 산업의 싹을 자르려 한다. 블록체인 특구는 와이오밍주와 스위스처럼 진취적이어야 한다. 디지털월스트리트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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