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가 태블릿PC 신제품 라인업 중 판매 비중이 높은 와이파이(Wi-Fi) 지원 모델을 반도체 부족으로 인해 국내에는 출시를 미룬 것으로 확인됐다.
전 세계적으로 지속하고 있는 반도체 부족 현상이 국내 IT기기 시장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코로나19로 전자제품 소비가 늘면서 발생한 반도체 부족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여 스마트폰을 포함한 다양한 모바일 기기 사업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한정된 반도체 공급과 높아지는 부품 단가를 맞추기 위해 고가 제품 위주로 라인업이 재편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오는 23일 국내에 정식 출시하는 ‘갤럭시 탭 S7 FE(팬 에디션)’ 라인업 중 반도체 부족으로 인해 와이파이 지원 모델은 제외되고 롱텀에볼루션(LTE)과 5G 지원 모델만 출시된다. 국내에서 반도체 부족 현상으로 인해 신제품 라인업이 조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와이파이 모델은 와이파이 환경이 구축된 공간에서만 쓸 수 있어 LTE나 5G 연결 모델 보다 가격이 저렴해 가장 수요가 많다. 이러한 이유로 와이파이 모델을 기다리던 국내 소비자들은 충격을 받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가장 수요가 많은 와이파이 모델이 국내 출시에서 제외된 점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모바일 기기의 핵심 부품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부족 현상이 이제는 IT 기기에까지 전이될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전자기기 회사들은 일반적으로 태블릿 등 IT 기기를 출시할 때 와이파이 모델의 가격을 LTE와 5G 버전에 비해 저렴하게 책정한다. 와이파이 환경이 구축된 곳에서만 온라인에 접속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와이파이 사용환경이 개선되면서 소비자들의 수요가 높아 전체 판매량의 6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 갤럭시 탭 S7 FE의 경우도 LTE를 지원하는 64GB 모델의 가격이 69만9,600원인 점을 고려하면 와이파이 버전의 경우 50만 원대에 출시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와이파이 수요 고객들을 LTE 모델로 유인하기 위해 LTE 버전 가격을 60만원대로 끌어 내리려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반도체 부족 현상은 삼성전자의 IT 기기 분야에도 강력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당초 삼성전자가 올해 8월 언팩(공개) 행사를 통해 공개하려 했던 준 프리미엄급 스마트폰인 ‘갤럭시S21 FE’의 공개 및 출시 일정을 10월로 미뤘다. 지난해 ‘갤럭시S20 FE’로 상당한 판매고를 올렸던 삼성전자가 올해 출시일을 미룬 것은 AP 수급난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갤럭시S21 FE를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확보한 국내에는 출시하지 않고, 애플 등과 경쟁하는 미국과 유럽에서만 출시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가 지난 3월 보급형 스마트폰임에도 사상 첫 언팩 행사를 열 정도로 공을 들였던 갤럭시A 시리즈 중 ‘갤럭시A 52’와 ‘갤럭시A 72’가 아직까지 국내에 출시되지 않은 것도 AP 부족 때문이다. 삼성전자에 정통한 한 IT 업계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볼 때 갤럭시A 52와 72는 이미 국내에 출시됐어야 한다”며 “반도체가 부족한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보급형 수요가 국내 보다 많은 해외로 우선 돌리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고 전했다.
IT기기 제조업체들은 가격을 인상하거나 마진율이 높은 고가 모델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최근 출시가 연기 되거나 라인업에서 제외된 제품들은 보급형이거나 가격대가 낮은 라인업들이 대부분이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IT 기기 수요는 증가하는데 반도체 부족으로 인한 공급량 감소로 노트북, 프린터, 스마트폰 등 IT 기기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