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칼럼

[만파식적] 와칸회랑





19세기 중엽 대영제국과 러시아제국은 중앙아시아에서 패권을 다퉜다. 남하하는 러시아와 북상하는 영국이 아프가니스탄 주변에서 치열하게 주도권 싸움을 벌였다. 영국은 러시아의 인도 진출을 우려해 길목인 아프가니스탄을 세 차례나 침공한 끝에 조약을 통해 아프간과 인도(현 파키스탄) 간의 현재 국경을 만들었다. 영국이 러시아와 직접 대치하지 않도록 아프간의 동쪽 끝 영토에 꼬리처럼 긴 와칸회랑을 완충지로 둔 것이다.

관련기사



와칸회랑은 남북 16~22㎞, 동서 350㎞ 길이로 동쪽 끝은 중국의 신장웨이우얼자치구와 연결된다. 와칸은 회랑 내에 흐르는 강과 산맥의 이름이다. 회랑의 남쪽 힌두쿠시산맥과 북쪽 파미르고원 사이에 놓인 길은 오래전부터 중국과 서역을 연결하는 실크로드의 일부였다. 8세기 통일신라의 혜초 스님이 인도로 갈 때 이 길을 지났다. 고구려 출신의 당나라 고선지 장군이 서역 원정에 나섰던 길이기도 하다. 당시 이슬람제국도 동쪽으로 확장을 거듭해 이곳에서 당나라와 대립했다. 13세기에는 이탈리아의 마르코 폴로가 이곳을 통해 중국으로 건너가기도 했다.

미군의 아프간 철수가 90% 이상 완료되면서 탈레반의 점령지가 세 배로 늘어나는 등 아프간은 월남 패망 당시의 풍경을 닮아가고 있다. 반면 중국은 최근 와칸회랑 국경 일대에 군사기지를 만들고 왕이 외교부장이 타지키스탄 등 주변 3국 순방에 나서는 등 ‘탈레반 후폭풍’에 대비하느라 비상이 걸렸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할 경우 알카에다·IS·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ETIM) 등 수니파 테러 단체의 해방구로 변신하고 와칸회랑을 통한 이들의 신장 침투도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ETIM은 중국 위구르족 청년들이 신장에 ‘동투르키스탄’이라는 독립국을 세우려고 1990년 설립한 저항 단체다. 중국의 탄압으로 그 세력 일부가 아프간에서 활동하고 있다. 미국은 철군하면서도 ETIM을 테러 단체 제재 명단에서 제외했다. 이를 두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노림수로 보는 시각도 있다. 국제 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부국강병의 자세로 자강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부끄러운 역사가 되풀이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만든다.


오현환 논설위원
hhoh@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기사의 댓글(0)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