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조직 간 업무 떠넘기기, 일명 ‘업무 핑퐁’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업무 떠넘기기는 담당이 모호할 때 다른 사람, 다른 부서로 일을 미루는 행위로 조직 내 고질적 병폐 중 하나다. 흥미롭게도 업무 떠넘기기는 조선시대에도 존재했다.
국가 경영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기록 유산 중에는 ‘조선왕조의궤’가 있다. 조선시대 국가에서는 왕실 혼례, 상례, 궁궐 중건, 공신 책봉 등 대사(大事)가 있을 때 업무 수행을 위한 임시 기관인 도감을 설치했다. 도감은 해당 업무가 종료되면 해체됐고 업무에서 생산된 일련의 문서들은 의궤로 편찬됐다.
그중 ‘분무녹훈도감의궤(奮武錄勳都監儀軌)’는 지난 1728년(영조 4년) 3월 발발한 이인좌(李麟佐, ?~1728년)의 난 진압에 공을 세운 이들을 공신으로 책봉하는 과정을 수록한 의궤다. 업무는 분무녹훈도감에서 총괄했고 공신 선정, 포상, 행사 개최, 공신 증서인 교서와 녹권, 초상화 제작과 배포를 수행했다.
공신은 공의 크고 작음에 따라 정공신과 원종공신으로 나뉘었는데 분무녹훈도감에서 가장 많은 업무를 차지한 것은 원종공신의 증서인 ‘분무원종공신녹권’을 제작, 배포하는 일이었다. 녹권에는 책자 형태로 8,000명이 넘는 원종공신 명단이 수록됐고 개개인에게 각각 배포됐다.
특히 인출 용지 마련에 상당한 재정이 소요됐는데 인출에 실패가 잦았고 공신의 이름도 잘못 수록돼 수정, 인출이 반복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녹권의 인출 용지는 원래 조선시대 국가 재정을 관리하던 호조에서 마련해야 했다. 그러나 호조는 국가의 재정을 아끼고자 1729년(영조 5년) 2월 18일 영조에게 종이 마련은 호조에서 감당하지 않고 도감에서 지방의 은닉한 재산, 역적 집안의 재산을 몰수해 처리하도록 보고했고 영조는 이를 윤허했다.
그런데 다음 날인 2월 19일, 조선 300년 동안 도감에서는 업무 처리에 필요한 물목을 호조로부터 받았고, 호조판서가 재정을 지나치게 아껴 억지로 일을 떠넘겨 지체하게 만들고 있다는 보고를 올렸다. 이에 영조는 여러 문서를 결재하느라 혼동했다고 인정하고 논의되는 사항이 자질구레하다며 호조에서 일을 처리하도록 했다. 즉 도감에 호조의 업무 떠넘기기는 실패로 돌아갔다.
이처럼 의궤는 조선시대 국가의 업무 처리 과정과 시행착오를 자세히 보여준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드러나지 않은 의궤도 많으니 이를 통해 다시금 마주하게 될 조선시대의 또 다른 모습도 기대해본다. /이상백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