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또 물 건너간 '미술품 물납제'

[2021 세법개정안]

세법 개정안 초안에 추진됐지만

與 '부자감세 논란'에 결국 빠져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 -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 언론 공개회에서 참석자들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연합뉴스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 -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 언론 공개회에서 참석자들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연합뉴스




정부는 세법 개정안에서 미술품에 대한 상속세 물납을 추진하려고 했다. 하지만 당정 간 최종 협의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제동을 걸어 없던 일이 됐다. 기획재정부는 정부 대신 의원 발의로 미술품 상속세 물납제도를 입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여당이 난색을 드러낸 만큼 도입 여부는 불투명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26일 기재부에 따르면 세법 개정안 초안에는 오는 2023년 1월 2일 이후 상속분부터 미술품 물납이 허용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물납심의위원회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설치하고 외부 전문가가 함께 미술품의 금액을 감정한 뒤 기재부가 물납을 받아들일지 말지 최종 결정하는 방식이다. 감정가가 사회 통념상 지나치게 높다고 판단될 경우 기재부는 물납을 거부할 수 있다. 음지에서 이뤄지는 미술품 거래의 양성화를 이끌어 국민들이 귀한 문화유산을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의의도 물납을 허용하려던 배경이다.



현행 세법은 상속세와 재산세에 물납 대상 재산을 유가증권과 부동산만으로 한정하고 있다. 반면 프랑스·영국 등에서는 미술품 물납제도를 인정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10월 발간한 ‘상속세 미술품 물납제도 도입을 위한 입법론적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는 상속세·증여세·공유세·재산세 등에서 미술품 물납을 받으며 영국과 일본도 상속세를 납부할 때 허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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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 -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 언론 공개회에서 참석자들이 천수관음보살도와 수월관음도를 살펴보고 있다./연합뉴스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 -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 언론 공개회에서 참석자들이 천수관음보살도와 수월관음도를 살펴보고 있다./연합뉴스


국내에서 상속세 물납은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미술품 컬렉션이 주목받으며 공론화됐다. 1만 3,000여 점, 감정가 3조 원에 달하는 미술품 및 문화재의 해외 반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상속세 대납 가능 대상을 문화재와 미술품으로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조됐다. 문화계는 전 문체부 장관 8명이 연명한 호소문을 통해 도입을 주장했고 이광재·전용기 민주당 의원도 관련 법안을 별도로 발의하며 가세했다. 재정난으로 허덕이던 간송미술관이 지난해 상속세 납부 차원에서 삼국시대 금동불상 두 점을 경매에 내놓은 것도 논의에 방아쇠를 당겼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이 회장의 상속인들이 이건희 컬렉션을 대가 없이 국립미술관에 기증했지만 미술계에서 미술품 물납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세법 개정안 사전 브리핑에서 “당정 협의 과정에서 보다 여러 가지 논의와 심도 있는 평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아 제외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부자 감세 논란을 의식한 민주당이 반대한 셈이다. 여당이 이미 브레이크를 건 만큼 미술품 물납제 도입은 당분간 속도 조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잊을 법하면 위작 논란이 발생하는 등 미술품·문화재에 대한 가치 평가가 어렵다는 점도 물납제도의 걸림돌이다. 오문성 한국조세정책학회장은 “제도를 활용할 이들이 부유층인 만큼 여당으로서는 ‘부자 감세’ 논란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며 “선거를 앞두고 지지층의 정서에 반하는 세법 개정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우영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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