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에 이어 미국까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탄소국경세를 부과할 경우 우리나라 연간 수출은 71억 달러(약 8조 원) 감소해 국내총생산(GDP)이 0.28%나 낮아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수출 의존도가 높은 미국이 탄소국경세를 도입하면 우리 경제 전체에 직격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2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주요국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EU와 미국이 톤당 50달러의 탄소국경세를 도입할 경우 우리 수출은 연간 71억 달러 감소한다. EU가 탄소국경세를 도입한 경우 연간 0.5%(32억 달러), 미국은 0.6%(39억 달러)씩 수출이 각각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한은은 점차 기후변화를 비롯한 환경문제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 것으로 봤는데 그중에서도 탄소국경세가 가장 먼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초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으로 환경문제가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고 탄소국경세 연구에 나섰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EU와 미국은 탄소국경세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4일(현지 시간) EU는 오는 2023년 탄소국경조정제도를 도입한 뒤 2026년부터 탄소국경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미국 무역대표부도 3월 의회에 제출한 연례 보고서를 통해 탄소국경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고 미국 민주당이 탄소국경세 도입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탄소 집약적 산업 비중이 높아 탄소국경세 도입에 취약한 구조다. 특히 EU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미국이 탄소국경세를 도입했을 때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철강 등 금속 제품은 EU가 0.10%포인트, 미국은 0.13%포인트로 대미(對美) 수출 타격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을 통한 간접 경로로 타격이 예상되는 전기·전자 제품도 미국(0.13%포인트)이 EU(0.10%포인트)보다 부정적 영향이 더 컸다. 반면 자동차·선박 등 운송 장비(EU 0.16%포인트, 미국 0.15%포인트)나 합성수지·의약품 등 화학제품(EU 0.10%포인트, 미국 0.09%포인트)은 EU 수출이 좀 더 충격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탄소 가격을 이미 부담하고 있기 때문에 EU와 미국이 탄소국경세를 톤당 35달러 수준으로 감면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EU와 미국에 대한 수출은 각각 0.3%, 0.4% 감소한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무상 할당 비중이 EU에 비해 높아 감면 폭이 기대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탄소국경세 도입이 점점 다가오고 있지만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의 대응은 미흡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2050년을 목표로 탄소 중립을 추진하면서도 당장 밀어닥칠 충격에는 대비하지 않고 있다. 기업도 수출 다변화 등 적극 대응이 필요하다. 김선진 한은 국제무역팀 과장은 “정부가 탄소국경세 도입에 대응해 이해 당사국과의 협력을 통한 통상외교를 강화해야 한다”며 “기업의 탄소 저감 노력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금융이나 세제 지원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