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로스콤나드조르





2018년 4월 30일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정부의 인터넷 검열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러시아 당국이 ‘텔레그램’을 차단하자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온 것이다. 저항의 뜻으로 텔레그램 로고 문양의 종이 비행기를 날렸고, 통신 감독 기관 ‘로스콤나드조르(Roskomnadzor)’의 해체를 요구하는 피켓도 들었다.



러시아의 통신·정보기술·미디어 전반에 대한 관리·감독 업무를 맡는 로스콤나드조르는 2008년 12월 설립됐다.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총리로 물러나 사실상 ‘상왕’ 노릇을 하고 있었다. 푸틴은 장기 집권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로스콤나드조르를 설치했다. 푸틴은 2018년 다시 대통령에 선출된 뒤 로스콤나드조르를 통한 언론 통제를 노골화했다. 2019년 3월 푸틴은 ‘가짜 뉴스 금지법’과 ‘모욕 콘텐츠 차단법’ 등에 서명했다. 국가가 금지하는 정보를 유포시킨 정황이 확인되면 검찰의 정보 차단 요구에 따라 로스콤나드조르는 해당 매체에 정보 삭제를 요청해야 한다. 구소련 시절의 ‘소련 체제 훼손 활동 금지법’과 ‘반(反)소련 캠페인·선전 금지법’을 재현한 법안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푸틴의 제국’을 영속시키기 위한 ‘빅 브러더’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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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로스콤나드조르가 감옥에 갇혀 있는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와 관련된 사회단체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 49개를 일제히 차단했다고 한다. 푸틴 정권이 9월 총선을 앞두고 야권 탄압과 언론 재갈 물리기에 본격 나선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더불어민주당이 2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이른바 ‘가짜 뉴스’에 대해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 의무를 부과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손해배상의 하한선을 언론사 매출액과 연계해 법으로 규정한 것은 해외에도 사례가 없는 데다 위헌 소지가 있다. 언론 자유와 관련된 입법인데도 여야 합의를 거치지 않아 절차적 흠결도 있다. 그런데도 여권이 밀어붙이는 것은 언론에 재갈을 물려 유리한 선거 지형을 만들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다. 종신 집권을 위해 비판 여론을 탄압하는 ‘푸틴의 제국’과 점점 닮아가고 있다.

정민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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