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공짜 성장'은 없다…"뼈깎는 개혁으로 파이 키워야 모두에 기회"

[창간기획-리셋 더 넥스트]

<5> 선택의 순간 - 바로 세우는 정치

獨·佛 정치권, 노동유연화 등 추진해 실업률 낮추고 성장

표 급급한 韓, 돈뿌려 양극화 심화…勞는 밥그릇에 혈안

"이젠 '파이 커지면 새 기회' 메시지로 화합 정치 이뤄야"






# 독일에서 노동조합을 주요 지지 기반으로 하던 사민당은 지난 2002년 정치적 위험을 안고도 미래를 위해 하르츠 개혁을 단행했다. 파견 기간 상한(2년)을 폐지하고 해고제한법을 적용하지 않는 사업장의 근로자 기준을 점진적으로 20인 이하까지 늘리는 노동 유연화 정책을 펼쳤다. 변화하는 산업구조와 생활 패턴에 맞춰 소규모 시간제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었다. 그 결과 한때 20%에 육박했던 실업률을 6% 수준으로 낮추며 유럽 경제의 모범 국가가 됐다.

# 노동계의 지지를 받아 2017년 탄생한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도 지지율이 급락하는 가운데서도 성장을 위한 뼈를 깎는 구조 개혁을 진행 중이다. 기업의 해고·감원 규제를 완화하는 쪽으로 노동법을 개정해 고용 경직성을 풀었고 미래를 위한 연금 개혁까지 추진하고 있다.

정치권이 지난해 대규모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해 돈 뿌리기에 나섰지만 예견된 양극화는 막지 못했다. 한국은행이 5월 내놓은 조사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2~4분기 소득 1분위(하위 20%) 가구의 소득이 17.1% 급감했기 때문이다. 저임금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의 소득이 직격탄을 맞았다. 하지만 5분위(상위 20%)는 소득이 1.5% 줄어드는 데 그쳤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국민 88%에게 지급하는 재난지원금을 올해 포함해 두 차례, 49조 9,000억 원 규모의 추경에 합의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추경 편성으로 총 116조 6,000억 원의 재정을 살포하면서도 빨라지는 양극화를 막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에 따라 정치권이 호미로 막을 위기를 가래로 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인기에만 급급한 여야가 경제사회적 대변혁에 대비하기보다는 근시안적 재정 지원에 집중하고 있어서다. 이미 전 세계는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플랫폼 경제와 제조업 스마트화 등 디지털 체제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은 격변하는 경제와 일자리에 맞춰 노동 개혁과 같은 국가적인 구조 개혁으로 화답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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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양대 노총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고통 없는 정년 연장’ 등 더 큰 기득권을 요구하고 나섰다. 자산·소득이 집중된 이른바 ‘586세대’가 가뜩이나 진입 장벽이 높은 양질의 일자리에 철옹성을 쌓는 셈이다. 높은 실업률과 비정규직 일자리에 내몰린 청년 세대의 계층 이동 사다리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미래 세대가 좋은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경제가 고착되면 오는 2025년 초고령사회를 앞둔 대한민국의 앞날은 더욱 암울해진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이대로는 한국 사회와 경제가 지속이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안드레아스 바우어 IMF 한국 미션단장은 4월 “고령화 대응을 위해 노동시장 개선을 위한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는 대신 노동시장 유연화와 규제 완화로 민간에 활력을 줘야 급격한 저출산·고령화라는 난치병을 극복할 수 있다는 조언이다.

현장에서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들은 코로나19 이전부터 4차 산업혁명의 물결로 신산업에서 일자리가 팽창하는데도 저성과자의 해고가 사실상 불가능한 노동 규제는 꿈쩍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더 나아가 정치권은 개혁은커녕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같은 과잉 규제까지 들고나와 기업들의 고용 의지마저 꺾고 있다. 오죽하면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이 “공동체의 가치에 대한 정치권의 책임감을 찾을 수가 없다”며 “‘시장경제 파괴자’로서 (정치권을) 처벌해야 한다”며 작심 비판까지 했다.

이를 위해 정치권이 “다시 성장하자”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확고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촉구했다. 단기적인 고통이 있더라도 파이가 더 커지면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는 믿음을 줘야 사회경제의 구조 개혁에 성공할 수 있다는 조언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코로나19 상황에서 갈등이 심각해진 이유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성장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한국경제연구원이 1991~2016년의 경제성장률을 분석한 결과 경제성장률이 1% 높아지면 지니계수(가처분소득 기준)가 최소 0.29%포인트에서 1.94%포인트까지 개선된 점이 확인됐다. 성장률에 따라 양극화 양상이 달라지는 셈이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성장으로 모두가 경제적 과실을 얻음으로써 갈등의 정치를 끝내고 화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도 “대선은 미래 가치에 대한 평가”라며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일자리를 늘리는 방향으로 성장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경우 기자·김남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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