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금융가

“외국인, 새 시장이긴 한데…” 대포통장·먹튀 우려 큰 은행권

외국인에게 비대면 통장 개설 ‘그림의 떡’

부처 비협조에 은행 소극적인 탓

외국인 대출, 저축은행은 사실상 불가





최근 직장 문제로 한국에 거주하게 된 중국인 A씨는 모바일로 국내 B은행의 계좌를 만들려고 하다가 실패했다. B은행의 모바일 뱅킹 애플리케이션까지 설치했지만 정작 B은행에서 모바일로 외국인에게 비대면 입출금 통장 개설을 지원해주지 않은 탓이다. A씨는 외국인등록증, 재직증명서 등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지점을 방문하고 나서야 입출금 통장을 개설할 수 있었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200만명에 이르지만 은행들은 여전히 외국인 대상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소극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외국인 명의의 통장이 범죄에 악용되거나 외국인이 대출 후 ‘먹튀(먹고 튀다)’할 가능성을 우려해서다. 은행들은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금융이 새로운 시장이긴 하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 등 시중은행 가운데 모바일로 외국인 고객에게 입출금 통장을 개설해 주는 곳은 한 곳도 없다. 입출금 통장은 예·적금, 대출 등에 앞서 기본 금융상품이다. 해당 은행을 이용하는 데 첫 단계가 되는 상품조차 외국인에게는 모바일로 간편하게 가입할 수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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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은 실명 확인의 방법으로 외국인등록증을 활용할 법적 근거가 없는 점을 이유로 꼽고 있다. 현재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등은 개별 법에 따라 신분증 진위확인 정보를 금융기관에 제공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가 있는 반면 외국인등록증은 관련 규정이 없어 금융사가 외국인등록증의 진위확인서비스를 도입·운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2019년 금융위원회가 ‘온라인 금융거래 활성화 등을 위한 비대면 실명확인 가이드라인’을 통해 외국인의 비대면 계좌 개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나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불편이 계속되고 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부처 간 협의가 안 된 점도 있지만 은행권에서도 적극적이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실제 창구에서도 대포통장에 이용될 가능성 때문에 재직증명서와 수개월 간 급여이체 등을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신한은행 등 일부 은행에서는 대포통장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낮은 예·적금에 한해 모바일로 외국인의 가입을 열어두고 있다. 리스크가 적으면서 외국인 고객의 편의성을 높일 수 있는 서비스는 키워가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대출 부분 역시 대출 부실과 새로운 먹거리 사이에서 금융권의 고민이 깊은 모습이다. 저축은행 업권에서는 외국인의 금융 이력, 신용도를 평가할 근거가 부족한 점을 들어 사실상 외국인을 겨냥한 대출 상품을 아예 취급하고 있지 않는다. 상위 저축은행의 한 관계자는 “법적·제도적으로 외국인에게 대출을 막을 근거는 없다”면서도 “해외 지점을 운영하는 시중은행은 해외 네트워크를 통해 외국인의 금융 이력을 확인할 수 있지만 저축은행은 불가능해 외국인에게 대출을 판매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시중은행은 신규 고객 확보에 초점을 두고 외국인에게 신용·담보대출을 판매하고 있지만 내국인보다 한층 더 까다로운 심사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외국인 차주가 돈을 빌린 뒤 갑자기 출국해버릴 경우 대출 부실의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일부 은행에서는 상장 회사에 근무하는 외국인 등 내부적으로 대상에 제한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지영 기자·김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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