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온수산단에 입주한 40년차 뿌리 기업 A사는 최근 직원 한 명이 퇴사했지만 더 이상 인력 채용 계획이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수익 악화에 최근 몇 년간 이어진 최저임금 인상,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달부터는 5~50인 미만 기업을 대상으로 주 52시간제마저 도입되면서 경영 상황이 더 나빠졌기 때문이다.
A사 대표는 “될 수 있으면 단가가 맞지 않는 일은 수주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면서 "최대한 업무를 자동화해 인력이 많이 필요한 부분은 외주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주 52시간제 본격 도입과 최저 임금 인상 결정까지 겹친 가운데 의욕적으로 사업을 키우려다가는 되려 회사만 힘들어질 수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 7월부터 5~50인 미만 기업 주 52시간제 확대 시행이 시작된 지 한 달째. 중소 기업 현장에서는 인력이 모자라지만 채용은 꿈도 꾸지 못한다며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기업에 비해 재정 운용 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당장 인력을 늘리기도 쉽지 않고 혹여나 주 52시간제를 어길 경우 정부로부터 제재가 들어오면 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금속가공업체 B사 대표는 "주 52시간제 도입이 중소기업의 생산성 저하로 직결되고 있다"며 “1인당 근무 가능한 시간이 줄어 기존 물량을 맞추려면 인력 충원이 필요하지만 당장 그럴 만한 재정적 여건이 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주 52시간제가 당장 줄폐업을 낳지는 않을 수 있어도 경영 손실이 계속 쌓인다면 결국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종길 금속열처리공업협동조합 전무는 “중소기업 대표들 사이에서는 현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주 52시간제 도입은 너무하다는 기조가 여전히 강하다"며 “당연히 정부에서 시키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지만 경영 상황이 계속해서 나빠진다면 차라리 공장 문을 닫겠다는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고용주뿐만 아니라 근로자들도 주 52시간제에 대한 불만을 내비치고 있다. B사 대표는 “근로자 입장에서는 야근이나 주말 근무를 못하니 그만큼 추가 수당이 줄어 손해를 본다"며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될 때까지만이라도 주 52시간제 도입을 유예해달라고 끊임 없이 요구했지만 이 같은 현장 사정을 전혀 감안하지 않고 강행하는 바람에 기업과 근로자 양 측 모두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말했다.
중기 현장에서는 인력 시장이 흔들리면서 중소기업의 우수 기술을 연결시킬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이 부족한 점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상속세 부담으로 가업 승계가 쉽지 않다는 부담감이 큰 데다 기업의 기술력을 자식이 아닌 젊은 직원에게 전수해 주고 싶은 생각이 있지만 중소기업에 우수한 젊은 인력이 부족해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중소기업뿐 아니라 자영업자들도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코로나 19확산과 4단계 도입으로 경영 악화가 심화돼 고충을 호소하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최저임금 인상 결정과 5~50인 미만 사업장 주 52시간제 본격 도입, 코로나19로 인한 영업 단축까지 겹쳐 힘든 상황에 최근에는 물가 폭등으로 원재료 값이 크게 올라 수익성을 맞추는 것 자체가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 마포의 유명 냉면집인 '능라도'는 최근 서빙로봇을 도입했다. 직원만 십수명인 이곳이 서빙로봇을 도입한 것은 인건비 부담이 계속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자영업자들은 수익을 내지 못해 장사를 그만 둬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지만 은행 대출을 갚아야 하는 부담 때문에 폐업마저도 쉽지 않다고 호소한다. 폐업하지 못한 채 울며 버티는 자영업자의 대출이 쌓이면서 지난해 1분기 700조 원이던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올 2분기 841조 원까지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