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일이다. 가족들이 가구를 재배치하면서 작은 서랍장 하나를 두고 테트리스 하듯 최적의 자리를 찾고 있었다. 여기 딱 들어갈 것 같은데 너비가 얼마나 되더라 하길래 나는 재빨리 서랍장의 너비를 재러 갔다. 팔을 벌려 양손 끝을 서랍장의 양 끝에 댄 뒤 최대한 팔을 움직이지 않으려 애쓰며 걸어갔다. 벌린 팔을 보이며 서랍장 너비가 이만큼이라고 했는데, 측량 정보 대신 큰 웃음을 선사하고 말았다. 누가 옆에서 살짝 건드리거나 벽에 스치기만 해도, 아니 그냥 몇 발짝 걷기만 해도 두 팔 벌린 폭은 너무 쉽게 바뀌었다. 신체를 사용해 무언가를 계측하려는 시도는 그 결과의 불확실성을 담보로 한다.
처음 천문학을 배울 때 선배들은 손가락을 이렇게 저렇게 펴 보이며 하늘에 뜬 별들 사이의 거리를 재곤 했다.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접고 나머지 세 손가락을 펴서 붙이면 그 폭이 5도, 주먹을 쥐면 10도, 다섯 손가락을 다 펼치면 한 뼘이 20도라고 했다. 어린 시절 두 팔 벌린 정량화 시도에 실패했던 기억 때문일까, 선배들의 그런 설명을 나는 대충 듣는 척만 했다. 손가락이 짧은 사람도 있고 긴 사람도 있는데, 손을 내 눈 가까이 펼치냐 멀리 펼치냐에 따라 거리가 다른데, 생각하며 불신의 싹을 틔웠다. 선배들은 유명한 별자리들의 폭이 몇 도인지 이미 외우고 있으면서 내가 아마추어 천체 관측에 대해 잘 모르니까 흰소리를 하는 줄 알았다.
과연 내가 잘 모르는 게 있었다. 손으로 하늘을 잴 때는 바른 자세로 서서 팔을 얼굴 앞으로 쭉 뻗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팔의 길이를 반지름으로, 세 손가락이나 주먹의 너비를 호의 길이로 하는 부채꼴을 만들어 그 중심각을 재는 것이다. 팔의 길이와 손의 크기는 대개 비례관계에 있다고 한다. 손이 크거나 작아도, 팔이 길거나 짧아도 각자가 팔과 손으로 그리는 부채꼴의 중심각은 서로 비슷하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손이 아니라 팔 전체로 하늘을 재는 행위다. 이 방법을 터득하려면 남들의 손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뻗은 팔도 봐야 하고,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그 배경도 목적도 파악해야 한다.
천구상 각거리의 묘미는 일식과 월식에서 볼 수 있다. 태양은 아주 거대하지만 무척 멀리 있고 달은 태양에 비해 무척 작지만 가까이 있다. 그리고 둘 다 둥글다. 지구로부터의 거리를 반지름으로 하고 천체의 지름을 호의 길이로 하는 부채꼴을 그려 보면 절묘하게도 두 부채꼴의 중심각, 즉 두 천체의 각크기가 거의 같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온전히 가릴 수 있는 것이다. 만약 화성으로 이주할 생각이 있다면 일식과 월식의 신비로운 풍경 같은 건 포기해야 한다. 그런 건 지구에서 살아 숨 쉬는 생명들에게만 주어지는 호사다. 화성에서 보는 태양은 지구에서보다 훨씬 작고, 안 그래도 작은 태양 앞으로 그보다 더 작고 울퉁불퉁한 화성의 위성인 포보스나 데이모스가 지나가는 것이 화성에서의 일식이다.
하늘에서의 각거리를 팔과 손으로 잴 때 유의할 점이 하나 더 있다. 손가락 세 개를 붙인 너비나 주먹의 너비는 비교적 일정한 단위지만 펼친 손가락 사이의 거리에는 불확실성이 내재한다는 것이다. 팔에 비해 손가락이 짧은 사람은 한 뼘의 너비가 20도 정도인데 손가락이 긴 사람은 25도 가까이 된다. 손가락 기저부 관절이 움직이는 범위도 사람마다 다르다. 손가락을 대충 펼 때와 힘껏 펼칠 때 손가락 사이의 거리 역시 바뀐다.
그래서 별다른 도구 없이 몸으로 별들 사이의 거리를 잘 재고 싶다면 연습을 거듭해야 한다. 팔을 앞으로 쭉 뻗었을 때의 감각을 느껴 봐야 한다. 손가락도 이렇게 저렇게 여러 번 펼쳐 보며 어떻게 힘을 줘야 정해진 각도가 나오는지 찾고 그때의 근육의 긴장 상태를 기억해 둬야 한다. 정면에서 머리 꼭대기 위까지 양손을 번갈아가며 재 보면서 각거리 90도가 자신의 손으로는 몇 뼘이나 되는지, 록 공연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중지와 약지만 접은 ILY(I Love You) 사인에서 검지와 새끼손가락 사이의 각거리가 15도가 되게 하려면 두 손가락이 얼마나 벌어져야 하는지를 확인해 둬야 한다. 별을 보러 가는 것은 의외로 육체적인 활동이다.
팔을 쭉 뻗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손가락으로 측량하는 장면에만 집중한다면 분별력을 잃기 쉽다. 손가락을 쓰는 데 적절한 용법과 그렇지 않은 용법이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엄지와 검지를 살짝 벌려 멀리 있는 건물의 높이를 표현할 수도, 눈앞에 있는 작은 사물의 길이를 뜻할 수도 있다. 가구의 너비가 두 팔을 이렇게 벌린 만큼이라고 한다거나 엄지와 검지 사이의 거리에만 시야를 한정하며 그것이 무언가를 의미한다고 우기는 것은 주로 분별력이 충분하지 않을 때 하는 행동이다. 단 예외는 있다. 양팔을 한껏 벌리며 이만큼 사랑한다고 말하는 아이는 무한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적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