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까지 확장 재정을 주문함에 따라 내년 600조 원대 ‘초슈퍼예산’이 가까워졌다. 확장 재정의 개념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의 생각이 달라 앞자리가 ‘5’냐 ‘6’이냐를 놓고 당정 충돌도 불가피해 보인다. 코로나19 타격이 장기화하는 점을 감안해도 브레이크 없는 지출로 나라 곳간이 텅 비면서 재정 정상화를 다음 정부로 떠넘기냐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2022년 예산안을 다음 달 초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올해 본예산 규모가 558조 원인 만큼 총지출 증가율이 7.6% 이상을 기록할 경우 600조 원을 돌파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이어 지난달 29일 민생경제장관회의에서도 “내년 정부 전체 예산을 확장적으로 편성하기 위해 재정 당국과 부처들이 함께 논의하라”고 재차 재정의 역할을 강조했다.
확장 재정에 대한 정의는 각기 다르지만 정부는 통상 성장률을 기준으로 확장과 긴축 재정을 구분한다. 정부가 내년도 경상성장률 전망치를 4.2%로 잡고 있는 만큼 이보다 내년도 예산 증가율이 높을 경우 확장 재정으로 볼 수 있다. 재정수지 측면에서는 수입보다 지출이 더 많아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4.5%를 넘을 때 확장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돈을 풀어 복지를 늘리는 현 정부 기조상 정치권에서는 문 대통령이 언급한 확장 재정의 기준이 4.2%라고 보지 않는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대통령의 확장 재정 발언은 내년도 지출 증가율을 크게 가자는 사실상의 지침으로 해석된다”며 “지난해와 유사한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7% 초반만 돼도 충분히 확장적”이라고 말했다.
사실상의 기준점은 각 부처에서 기재부에 요구한 6.3%, 593조 2,000억 원이다. 부처 요구액 보다 전체 예산안이 적었던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기재부 내부에서는 600조 원을 넘기지 않겠다는 마지노선을 갖고 있다고도 전해진다. 앞 자리 숫자가 갖는 상징성이 큰 데다 실질적인 집행은 차기 정권 몫이기 때문이다. 다만 기재부 관계자는 “아직 심의를 하고 있는 단계여서 아무 것도 결정된 내용은 없다”고 밝혔다.
이미 두 차례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으로 올해 총지출액이 605조 6,000억 원에 달하는 점은 정부로서는 부담이다. 지금까지 예산을 짤 때 전년도 본예산과 추경을 합한 총지출보다 더 많이 편성해온 관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예산 증가율은 당해 본예산과 비교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추경까지 포함해 이보다 늘려야 한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증가율이 9%에 가깝게 된다.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은 각 지역의 현안 사업을 최대한 많이 담아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울 것이 분명하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는 “여야가 선거용으로 지역 예산을 크게 요구할 텐데 반드시 필요한 분야만 넣고 규모를 조금 줄여놓아 여지를 줘야 한다”며 “그래야 다음 정권에 대한 예의이고, 필요시 추경이라도 편성할 수 있는 재정 여력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점들을 준용하면 지난해 정부가 직접 발표한 ‘2020~2024년 중기 국가재정운용계획’은 또 공염불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내년 총재정지출 규모는 589조 1,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6.0%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현 추세상 금액뿐 아니라 증가율도 이보다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정부 내내 재정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면서 2017년 400조 원에서 불과 5년 만에 200조 원이 불어나고 국가 채무가 급등한 부분이다. 현 정부 4년간 본예산은 7.1%(2018년)→9.5%(2019년)→9.1%(2020년)→8.9%(2021년)씩 증가했다. 2017년 증가율(3.7%)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기본 파이가 커진 만큼 올해보다 8% 증가해도 603조 원이 된다. 이미 정부는 한국판 뉴딜의 청년 대책(2조 원)과 지방소멸대응양여금(1조 원) 등 부처 요구 안에 없었던 사업들을 추가했다. 뉴딜 내년 예산만 계획보다 7조 원을 늘렸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년 선거를 앞두고 지금까지 돈을 풀 만큼 풀었던 정부가 갑자기 긴축을 할 것이라 보지는 않는다”며 “이미 유가 상승에 따른 부담이 큰데다 금리 인상까지 앞둔 만큼 늘어난 빚은 차기 정부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