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니가 좋으면





김해자




시방도 가끔 찾아와 나를 물들이는 말이 있다

두레박 만난 우물처럼 빙그레 퍼져나가는 말

니가 좋으면 나도 좋아,

전생만큼이나 아득한 옛날

푸른 이파리 위에 붉은 돌 찧어 뿌리고

토끼풀꽃 몇 송이 얹어 머시마가 공손히 차려준



손바닥 만한 돌 밥상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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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뻐, 맛있어, 좋아,

안 먹고도 냠냠 먹던 소꿉장난처럼

이 세상 것이 아닌 말

덜 자란 토끼풀 붉게 물들이던

덩달아 사금파리도 반짝 빛나게 하던

니가 좋으면 나도 좋아,

그게 다인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말

나만 먹고 되돌려주지 못한

붉은 돌에 오소록 새겨진 말이 있다

고거 참, 고 머시마 참 선수네. 누구한테 배웠을까. 어려도 타고난 사랑꾼이네. 뽀얀 솜털 귀에 대고 한 말, 귀밑머리 하얄 때까지 사로잡고 있으니. 겨우 돌가루 찧어 풀꽃밥상 차리고도 평생 꺼내 먹게 하고 있으니. 늦었지만 나도 배워야겠네. ‘니가 좋으면 나도 좋아’ 오해하지 마시게. ‘여보, 당신이 좋으면 나도 좋아’ 뭐 이렇게 연습하겠네. 그런 다음 마구마구 선수처럼 남발하겠네. ‘친구야, 니가 좋으면 나도 좋아’ ‘나무야, 니가 좋으면 나도 좋아’ ‘야옹아, 니가 좋으면 나도 좋아’. 우물 담은 두레박처럼 찰랑찰랑 넘쳐흐르게 하겠네. <시인 반칠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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