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 않는 샘처럼, 선미의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언제나 새롭고 색다르다. 걸그룹으로 데뷔한 지 14년, 솔로 가수로 활동한 지 8년이 흘렀지만 선미는 현재도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 퍼포머에서 프로듀서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며 만능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노력 덕분이었다.
선미는 6일 세 번째 미니앨범 ‘1/6(6분의1)’를 발매했다. 그간 싱글 발표에 집중해왔던 그가 3년 만에 선보이는 미니앨범이다. 매 앨범마다 직접 작업에 참여하는 그가 활동 공백기는 줄이고, 앨범의 완성도는 높이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다. 오랜 시간 공들인 끝에 완성된 신보의 전곡에는 선미의 이름이 모두 크레딧에 올라가 있다. 그는 전곡을 단독 작사하고, 그중 4곡의 작곡에 참여했다.
‘6분의 1’은 선미의 독특하면서도 색다른 시선에서 시작됐다. 선미는 “중력이 6분의 1인 달에서는, 근심의 무게도 6분의 1일까?”라는 궁금증으로 내면의 깊은 감정들에 대해 들여다보게 됐다. 중력과도 같은 삶의 무게를 통해 갖게 되는 슬픔, 행복, 분노와 혼란스러움 등을 곡마다 녹여내며 자신의 이야기를 완성했다.
타이틀곡 ‘유 캔트 싯 위드 어스(You can't sit with us)’는 쉽게 볼 수 없는 선미의 발랄한 모습으로 가득 찼다. 근심의 무게가 6분의 1로 줄어든 것처럼, 여느 때보다 밝고 가벼워졌다. 선미의 랩은 신선한 변주다. 강렬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이 주를 이루던 콘셉트와는 달라 새롭다. 빠른 비트에 경쾌한 멜로디이지만, 연인에 대한 분노의 노래라는 것은 반전이다. 어딘가 모르게 서늘하게 느껴지는 반전미는 색다른 서머송의 분위기를 풍긴다.
퍼포먼스는 발랄함과 카리스마가 적절하게 조합됐다. 선미는 흥을 돋우는 리듬에 맞춰 골반을 흔들거나 귀엽게 점프하며 통통 튀는 매력을 발산한다. 이전 선미의 곡에서는 볼 수 없었던 145bpm의 빠른 비트로, 그에 맞게 동작도 많고 다채롭다. 구간마다 남녀 댄서들과 함께 다양한 동선을 펼치는 것 또한 보는 재미를 더한다.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분노를 이야기하는 것인 만큼 표정의 변화도 눈여겨볼 만하다. 사랑을 고백하다가도 “네가 싫다(I hate you)”고 이야기하는 이중적인 모습이 눈에 띈다. 극과 극의 표정 변화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가시나'와는 또 다른 매력이다.
하이틴 호러 영화를 연상케 하는 뮤직비디오는 콘셉트부터 스토리, 선미의 수준급 연기까지 모든 게 새롭다. 어딘가 잔뜩 화가 나있던 선미는 ‘Forgive me’(날 용서해줘)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서있는 남자친구를 보고 화분을 던진다. 선미는 신나는 마음으로 친구들과 비디오 가게로 향하고, 남자친구는 좀비가 돼 찾아온다. 좀비 떼가 몰려오자 선미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이내 총을 들고 싸우기 시작한다. 한바탕 총격전이 벌어진 뒤, 선미는 남자친구가 진심으로 용서를 비는 모습을 보고 사르르 녹는다. 짧은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이번 뮤직비디오는 신박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여기에 ‘킹덤’ ‘부산행’ 무술팀에게 직접 액션 트레이닝을 받은 선미의 수준급 총격신과 와이어 액션이 퀄리티를 높였다.
화수분 같은 선미의 아이디어는 매번 신선한 충격을 준다. 솔로 데뷔 앨범 ‘24시간이 모자라’에서는 정형화된 섹시 콘셉트를 벗어나 핑크 단발머리에 점프 슈트를 입고 맨발로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이 시선을 확 사로잡았다. 박진영이 프로듀싱한 앨범이었지만, 단발 머리와 맨발 콘셉트는 선미가 직접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에도 그는 뱀파이어 콘셉트의 ‘보름달’, 반전 표정으로 몰입도를 높인 ‘가시나’, 인어공주 콘셉트의 ‘사이렌’ 등 늘 기발한 콘셉트를 선보였다. 직접 본인의 이야기를 덧붙여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콘셉트는 더 뚜렷해지고 자신감이 돋보였다. 소화력이 뛰어난 퍼포머가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신박한 아이디어를 뒷받침하는 실력은 날이 갈수록 눈부시게 성장했다. 늘 시간과 실력이 비례할 수는 없지만, 선미의 시간은 정직했다. 꾸준한 노력이 뒤따른 덕분이다. 원더걸스의 서브 보컬이던 선미가 솔로 가수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건 뛰어난 퍼포먼스 때문만은 아니다. 무대 장악력은 물론 매력적인 보컬이 있는 덕분에 퍼포먼스가 더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매 앨범마다 보컬이 단단해진 선미는 특히 이번 앨범에서 보컬이 두드러졌다. ‘솔로 퀸’ 타이틀을 거머쥐고도 안주하지 않는 그가 더 나은 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선미팝’이라는 자신만의 장르를 구축한 선미는 또 새로운 모습을 꿈꾼다. 10대에 가요계 등장해 20대를 거쳐 30대가 될 때까지 늘 해왔던 것처럼. 그의 이야기에는 한계란 없다.
“어릴 때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정말 어른 같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저는 아직 어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커요. 한편으로는 ‘내가 앞으로 더 많은 걸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과 확신이 들고요. 요즘에는 나이가 숫자에 불과한 것 같아요. 새롭고 궁금하다고 느끼면 계속 사람들이 찾아주니까요.”(6일 ‘1/6’ 발매 기념 쇼케이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