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회계연도 집행률은 97.7%. 기획재정부는 올 2월 2020 회계연도 총세입·총세출을 마감한 뒤 예산 집행의 철저한 점검·관리를 통해 예산 불용률이 1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자평했다. 실제 2016년만 해도 11조 원(3.2%)이었던 불용액은 지난해 6조 6,000억 원(1.4%)으로 줄었다. 하지만 기재부가 자화자찬한 적극적인 집행과 달리 현장의 실집행은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다. 512조 원의 슈퍼 예산에다 네 차례의 추가경정예산안까지 합쳐 총 585조 원의 나라 곳간을 풀었는데 무려 34조 원(5.7%)이 실제 현장에는 집행되지 않았다. 정부는 누누이 불용액을 줄이면 추경을 편성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해왔지만 실제 집행되지 않은 규모는 지난해 3차 추경(35조 1,000억 원) 또는 올 2차 추경(35조 2,000억 원)과 맞먹는다. 제대로 썼다면 추가로 빚을 덜 냈어도 됐다는 의미다.
◇집행률만 100%, 실집행 떨어지는 사업 수두룩=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예산정책처에 의뢰한 ‘2020 회계연도 전 부처 사업 실집행 현황(4차 추경 포함)’에 따르면 집행률이 100%로 국고에서 모두 나갔어도 실집행은 제대로 되지 않은 사업들이 많았다. 주로 사회간접자본(SOC)이나 일자리 분야가 대표적이었다.
예를 들어 중소벤처기업부의 소상공인역량강화 사업은 3조 5,621억 원 중 83%(2조 9,572억 원)만 쓰였다. 행정안전부의 코로나19 극복 희망일자리 사업은 1조 2,060억 원에서 84%(1조 148억 원)만 실집행됐고, 고용노동부의 중소기업 청년디지털일자리 사업은 현장에서 13.3%(743억 원)만 전달됐다. 또 국토교통부의 주차환경개선지원은 2,642억 원 중 절반가량인 1,341억 원(47.2%)만 사업에 투입됐고, 문화재청의 문화재보수정비 사업(3,933억 원)은 실집행률이 78%로 약 900억 원이 남았다.
실집행률이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업은 총 1만 9,199개 중 8.8%인 1,706개나 된다. 현 상황을 반영하지 않고 짜 한 푼도 쓰이지 못한 사업도 적지 않다. 아세안 유학생 등 융복합 거점센터 건립(5억 7,000만 원), 흑산도 소형공항 건설(11억 3,000만 원), 개성공단 건설 지원(97억 9,900만 원), DMZ세계평화공원 조성(46억 2,500만 원) 등은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상황과 맞지 않게 편성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염명배 충남대 명예교수는 “배정된 예산을 쓰지 못하고 남았다면 재정 계획의 실패”라며 “정치적 목적으로 보여주기식 지출 팽창을 하니 효과는 떨어지고 재정 부담만 키웠다”고 말했다.
◇사전 준비 부족·수요 과다 예측으로 효율적 집행 못해=이처럼 실집행률이 부진한 것은 사업 준비 단계에서 사전 준비가 부족하거나 수요를 과다 예측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높은 지출 증가율로 유례 없는 세출 홍수를 이뤘으나 구멍이 뚫린 직접적인 증거인 셈이다. 지난해에는 추경과 본예산을 동시에 짜거나, 추경이 끝나자마자 다음 추경 작업에 착수할 정도로 숨 가쁘게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무리하게 사업을 집어넣거나 계획과 달리 공모 참여가 저조했던 것이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시행하지 못한 일자리 사업도 부지기수다. 9월에 4차 추경을 편성하면서 물리적 여건이 부족한 측면도 있었다.
예정처는 “국가재정의 상당 부분(43.7%)이 보조금·출연·출자 사업 등의 교부성 예산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고려해 집행 실적뿐 아니라 실집행 실적 역시 철저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례로 문화체육관광부의 교부성 사업 예산 실집행률은 66.4%에 그친다. 교부성 예산이란 정부가 해당 예산을 직접 집행하지 않고 지방자치단체 또는 민간 주체 등에 예산을 지급한 후 실질적인 사업 수행과 예산 집행을 담당하게 하는 예산을 의미한다. 실집행률은 최종적으로 해당 사업의 수혜자에게 전달됐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집행률보다 더 직접적으로 사업 성과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앙정부가 지자체나 기관에 재정을 공급해도 해당 예산이 사업 주체에 전달되지 않으면 재정 투입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어 보다 철저한 집행 관리가 필요하다. 특히 국회가 무리하게 예산 편성 권한을 행사하면 집행 부진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충분한 심의를 거치는 정부 예산과 달리 갑자기 정치권이 사업을 확 바꾸면 예산설명서조차 제대로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불가피하게 속성이어도 예산 사업을 반영할 때는 타당성 검증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