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6일 기준금리를 결정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앞두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7월 금통위 이후 기준금리 인상 여건은 폭넓게 조성됐지만 코로나19 4차 대유행의 한복판에서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부담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등 긴축 태풍이 다가오는데 집값 상승으로 가계부채가 계속 늘어나는 금융 불균형이 확대되고, 물가와 환율은 최근 급등세를 보여 이 총재가 2년 9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올리는 결단의 시간을 맞이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은 금통위는 26일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한다. 한은은 2019년부터 기준금리를 1.25%로 운용하다가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0.50%까지 낮췄다. 올 7월 금통위에서 코로나19 이후 처음 기준금리 인상 소수 의견이 나왔고 의사록 공개로 소수 의견 포함 매파(통화 긴축 선호) 금통위원이 다수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은이 이번에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 2018년 11월 30일 이후 2년 9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올리게 된다.
이 총재를 비롯해 다수 금통위원들이 사상 최저 수준인 기준금리를 올릴 때가 됐다고 보지만 코로나 확산세가 쉽사리 꺾이지 않는 상황이 최대 변수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매일 2,000명선을 위협해 거리 두기 연장·강화로 자영업·소상공인 피해는 갈수록 커지는데 한은이 금리를 올리면 자영업자들은 벼랑 끝에 몰릴 수밖에 없다. 한은에 따르면 올 3월 말 기준 전체 금융권의 자영업자 대출은 831조 8,000억 원으로 집계됐는데 올 4~6월 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증가액(9조 3,000억 원)과 가계대출 증가액 중 자영업자 대출을 추리면 6월 말 기준 자영업 대출 규모는 약 850조 원에 달한다. 최근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을 중단하는 등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어 한은이 기준금리마저 올리면 대출 금리 상승세는 한층 탄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만 한은은 코로나19 4차 유행에도 소비자들의 학습 효과 등으로 전반적인 경제 타격은 크지 않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 2분기 성장률도 전분기 대비 0.7%로 예상보다 높아 2차 추가경정예산안 집행 등을 고려할 때 올해 4.0% 성장은 가능할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기획재정부의 ‘최근 경제동향 8월호(그린북)’에서도 지난달 국내 카드 승인액이 7.9% 늘며 상승 폭이 확대되는 등 소비가 꺾이지는 않고 있다.
여기에 최근 물가와 환율 상황도 금리 인상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6%로 한은의 물가 안정 목표인 2%대를 훌쩍 넘었는데 이달 들어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며 1,180원에 근접해 인플레이션(지속적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이고 있다. 환율 상승은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을 높여 경제성장에 보탬이 되지만 수입 물가 상승을 촉발해 한 달가량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 상승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한은의 한 핵심 관계자는 “미국 연준이 테이퍼링 등 긴축 일정을 앞당길 움직임이 있고, 향후 통화정책의 여력을 빨리 확보해나가야 하는 측면도 간단치 않다” 면서 “금리를 한두 차례 올려도 ‘통화정책은 완화적 수준’이라는 공감대도 상당히 만들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코로나19 사태 직전의 기준금리(1.25%)도 당시에는 사상 최저치였다.
한편 국내외 금융기관들 중 다수도 26일 기준금리 인상 관측을 내놓고 있다. JP모건체이스와 우리금융경영연구소·캐피털이코노믹스는 금통위가 이달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 금통위는 금융위원장에 지명된 고승범 후보자가 이달 20일 금통위원 자리에서 물러나 이 총재를 포함해 6명의 금통위원이 과반수 의결로 기준금리를 정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