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로터리] 실명확인 계좌라는 치명적 독배

◆김형중 고려대 특임 교수

김형중 고려대 특임교수. /서울경제DB김형중 고려대 특임교수. /서울경제DB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마감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20일 업계 1위인 업비트가 신고의 물꼬를 텄다. 업비트의 신고는 마감 시한인 오는 9월 24일 전에 수리될 것으로 보인다. 눈여겨볼 것은 업비트가 실명 확인 계좌 계약서가 아닌 유지 확인서로 신고를 했다는 점이다.

특정금융정보법은 가상자산사업자 신고의 요건으로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 임원 금융 범죄 경력 부존재, 실명 확인 계좌 보유 등 세 가지를 들고 있다. ISMS 인증은 한국인터넷진흥원, 범죄 부존재 증명은 경찰청에서 받아야 한다. 이 둘은 모두 국가기관에서 발급한다. 실명 확인 계좌만 민간기관인 은행이 발급해준다.



금융위원회에 실명 확인 계좌는 ‘신의 한 수’였다. 거래소의 고삐를 잡되 책임을 지지 않고 빠져나갈 구멍이다. 이것이 없었다면 ISMS 인증의 주관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나 부존재 증명의 주관 부처인 행정안전부가 거래소 업무를 채가려고 덤벼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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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사무를 민간에 위탁할 때는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행정위임위탁규정’을 따라야 한다. 이 규정에는 행정기관 내에서의 위탁은 물론 민간 위탁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민간 위탁의 경우 ‘사무 처리 지침’을 통보하고 ‘적절한 조치’를 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데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은행에 사무 처리 지침을 준 바 없다. FIU가 볼 때 은행이 실명 확인 계좌를 발급하는 것은 은행의 자발적 선택이지 법률행위가 아니다. 그렇다 보니 은행마다 그 기준이 상이해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는다.

법적 위임을 했다면 정부가 은행에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말을 못한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계좌 발급에 대한 책임을 은행이 져야 한다고 발언한 것은 권한 위임이 없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린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은행이 국가 사무를 대신 처리해주고 피해를 뒤집어쓸 이유가 없다.

은행이 소탐대실하지 않으려면 두 가지 길이 있다. 첫째, ‘선(先) 신고 수리 후(後) 계좌 발급’의 길이다. 현행 특금법으로도 가능하다. 이번에 업비트가 택한 방법이다. 그렇다고 은행이 면책을 보장받은 게 아니고 받을 수도 없다. 둘째, 국회가 특금법을 개정해서 민간 위임 조항을 삽입하거나 아예 실명 확인 계좌 조항을 뺄 때까지 기다리는 길이다. 두 번째 길이 최선이다.

한국에서는 가상계좌로도 실명 확인이 충분히 가능하다. 실명 확인 계좌는 가상계좌의 부분집합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실명 확인 계좌 유무가 신고의 핵심 요건이라면 국가의 권한이 은행에 위임되는 게 맞다. 이대로라면 은행의 판단이 훗날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정유라의 입학은 이화여대 총장과 교수들의 구속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단초가 됐다. 은행은 실명 확인 계좌라는 치명적인 독배를 받아 들고 있다.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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