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 새로운 무역장벽 탄소국경세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경제학

글로벌 '탄소국경세 도입'에 액셀

이면엔 자국 산업 경쟁력 강화 의도

수출의존국 韓 탈탄소 필요하지만

기업 부담 고려 적정속도 유지해야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강인수 숙명여대 교수




유럽연합(EU)이 지난달 14일 기후 대응 법안 패키지인 ‘피트 포 55(Fit for 55)’를 발표했다. 이는 오는 2030년까지 역내 탄소 배출량을 지난 1990년 수준 대비 55% 감축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광범위한 기후변화 대응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기존에 운용 중인 탄소배출권거래제(ETS)의 대상 확대를 포함해 2035년부터 내연기관 차량 출시 금지, 대체 연료 인프라 확충, 친환경 전환 과정에서 탈락하는 계층과 지역·산업에 대한 지원 대책 등이 총망라돼 있다.

이 중 특히 주목받은 내용이 탄소국경세로 불리는 ‘탄소 국경 조정 메커니즘(CBAM)’ 도입이다. 이는 EU 역외산 철강·알루미늄·비료·시멘트·전기가 역내로 들어올 때 수입 업자가 전년도 수입품 내 탄소 배출량에 상응하는 CBAM 인증서를 의무적으로 구매해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23년 1월 1일부터 이 5개 분야에 탄소국경세를 적용하지만 3년간은 수입품의 탄소 배출량 보고만 받고 2026년부터 실제로 부과할 예정이다. EU는 향후 탄소국경세를 전 수입품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탄소국경세 도입은 기후변화에 대응해 탄소 배출을 감축해야 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자국 산업 경쟁력 강화와 환경 규제 주도권 행사 의도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는 EU가 내세운 명분에도 불구하고 개도국에 대한 탄소 감축 기술 지원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탄소국경세 관련 내용을 발표하면서 “해당 제도를 도입해야 유럽 기업이 살아난다”는 말을 한 점에서도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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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관세 부과를 통해 탄소 배출량을 실물 가격에 반영함에 따라 탄소 배출량이 많은 개발도상국 수출품은 그만큼 가격경쟁력을 잃게 된다. 중국과 러시아 등 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들이 탄소를 앞세운 새로운 무역장벽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철강이 주요 수출 품목 중 하나인 한국도 이 제도가 EU 안대로 본격적으로 시행될 경우 큰 타격을 입을 것은 명확하다. 그러나 EU 탄소국경세는 1년 이상 걸리는 EU의 일반 입법 절차를 거쳐 내용이 확정되기 때문에 세부 내용이 수정될 여지는 남아 있다. 발표된 EU 안도 초안에 비해 간접 배출과 다운스트림(제품을 시장에 내놓기 위한 공급망) 분야가 제외되는 등 적용 범위가 축소됐다. 이처럼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한 모양새를 갖추게 된 배경에는 독일의 자동차 산업 경쟁력 요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경우 기후위기 대응을 강조한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2050년까지 탄소 중립(Net Zero) 달성을 공언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올해 3월 발표한 ‘2021년 무역정책 어젠다’에서 미국도 온실가스 배출에 관한 국제 거래 시스템 도입을 위해 노력하고 필요시 합리적인 탄소 국경 조정 정책 도입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 연방정부 차원에서의 탄소국경세 관련 법안은 없지만 주 단위의 법안은 존재한다. 미국은 아직 탄소 배출이 많은 자국의 석유·철강·자동차 산업 보호 등을 이유로 친환경 무역장벽 설립에 다소 소극적이다. 그러나 동맹 강화와 강력한 친환경 정책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글로벌 무역 질서를 재편하려는 바이든 행정부가 EU와 공조하면서 점진적으로 탄소국경세에 대한 주도권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국제통화기금(IMF)은 탄소국경세가 무역장벽화하는 것에 대한 대안으로 국가별 개발 단계에 따라 상이한 최저 탄소 가격을 적용하는 ‘탄소가격하한제’ 도입을 주장했다. 이처럼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고 국가별·산업별로 각기 다른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글로벌 탄소국경세의 판도를 단정적으로 예측하기는 어렵다.

어떤 형태로든 탄소 배출이 무역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에 대비가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탄소 중립 달성의 핵심인 ‘이산화탄소 포집·활용 기술(CCUS)’ 개발과 같은 근본적인 노력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정부가 현실을 도외시한 채 지나치게 빠른 탄소 저감 목표를 대내외적으로 공표하고 밀어붙이는 것은 재고돼야 한다. 이중·삼중으로 기업의 부담을 증가시키는 행태는 지양해야 한다. 탄소국경세 도입의 이면에 자국 산업 경쟁력 제고라는 목표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적정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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