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연이어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대출 등의 신규 대출을 중단하고 있다. 아직은 일부지만 조만간 전체 금융기관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는 은행권의 자율에 맡긴 것이라기보다는 정부 정책의 영향이 크다. 최근 신임 금융감독원장과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가계 부채와의 전쟁’을 예고한 바 있다.
물론 금융 당국의 가계 부채 리스크 관리를 위한 고민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갑작스런 대출 중단 조치는 주택 시장에서 실수요자들에게 예기치 못한 큰 타격을 준다. 얼마 전에 계약을 했는데 중도금·잔금 치를 걱정에 잠이 오지 않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신혼집을 마련하려고 대출을 알아보다가 좌절하는 청년 세대의 원망이 귀에 들린다. 겨우 전세대출을 받아 전셋집에서 살고 있는데 계약 기간이 끝나면 꼼짝없이 월세로 가야 할지 모른다는 국민의 불안이 눈에 밟힌다.
지금의 대출 규제는 현 정부가 부동산 정책 실패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집권 4년 차에 들어 정부여당은 그동안 20번이 넘는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일부 인정하고 공급을 확대하는 쪽으로 겨우 방향을 잡았으나 수요를 억제해야 한다는 정책 기조는 포기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시장 원리를 무시하고 오로지 투기꾼만 잡으면 된다는 식의 생각으로 내 집을 갖고 싶어 하는 평범한 국민의 욕망을 과소평가했다. 주택은 거주 목적으로만 사용해야 한다며 정상적인 투자 행위조차 죄악시해왔다. 하지만 인간의 기본적 욕구에 반하는 정책이 과연 지속 가능성이 있을까.
당장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에게도 다주택을 처분하라는 청와대의 방침이 잘 먹혀들지 않는다. 전 청와대 수석이 아파트와 공직 유지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별 고민 없이 직을 던져버린 것이 대표적인 예다. 반면 정권 초기 “집 팔 기회 드리겠다”는 말을 믿고 집을 팔았던 국민의 심경은 과연 어떨까.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것은 나쁜 현상이 아니고 매우 정상”이라는 여당 의원의 말을 당장 전셋집에 살고 있는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집값을 천정부지로 올려놓은 정부가 대출을 막는 것은 무주택자들에게는 내 집 가질 꿈을 포기하라는 신호로 들릴 수밖에 없다. 현금을 가지지 못한 서민들은 부동산 시장에 진입조차 말라는 것인데, 과연 이것이 제대로 된 정책인지 허탈감과 분노를 느끼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전세 제도를 통해 안정적으로 저축해 돈을 모으고, 주택담보대출로 장기간의 계획을 세워 경제활동을 하며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 대다수 국민의 목표이자 상식이었다. 현 정부는 수십 년간 이어진 이러한 상식을 실패한 부동산 정책과 연계해 폐기하려는 것이 아닌지 극히 우려스럽다. 대출 중단 조치로 가계 대출 리스크를 줄이는 결과를 도출할 순 있을 것이나 수많은 무주택자의 희생과 불안을 담보로 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