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권력자로부터 언론, 시민 단체 등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발의된 ‘소송 남발 방지법’을 심사도 하지 않은 채 방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 당시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모욕죄를 삭제하겠다고 주장한 민주당의 이중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특히 야당 시절 언론의 자유를 외친 민주당이 집권 여당으로 변신한 뒤 언론 보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려는 모습에 대해 모순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26일 정치권에 따르면 최기상 민주당 의원이 지난 5월 발의한 ‘전략적 봉쇄소송 방지법’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한 차례도 논의되지 못했다. 법안은 제소자의 주장이 사실적·법률적 근거가 없고 이를 알 수 있는 상황에서 소송을 제기할 경우 피고가 중간판결을 신청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 경우 중간판결 선고 때까지 소송절차는 중단된다. 이는 원고의 승소 가능성이 크지 않더라도 언론, 시민 단체 등에 소송 부담을 안겨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전략적 봉쇄 소송’을 막자는 취지다. 최 의원은 법안 취지와 관련해 “권력과 힘을 가진 조직이나 공인이 사회적 중요성이 있는 문제에 대한 언론, 시민 단체, 국민들의 의사 표명을 막기 위해 명예훼손이나 업무방해 등을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 등의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궁극적으로 국민의 헌법상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 당시 ‘권력자에 의한 언론 출판의 자유 제약’을 막기 위해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모욕죄를 삭제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금태섭 전 의원은 2016년 이 같은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광우병 위험성을 제기한 PD수첩, 정부의 환율정책을 비판한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떡값 검사 명단을 발표한 노회찬 의원 등 국가기관과 공무원·기업 등에 의해 ‘명예훼손죄·모욕죄’ 규정을 악용해 고소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법안 발의 배경을 적었다.
유승희 전 의원은 같은 해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의 범위를 “허위임을 알면서도 훼손한 경우”로 제한하고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삭제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야당 때는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를 삭제하자고 하고 지금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자는 것은 일관성이 없는 주장”이라며 “정치 사회적으로 쟁점적인 법안일수록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