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대표 예술가를 꼽자면 서예가 김생, 화가 솔거, 음악인(거문고) 백결, 그리고 조각가 양지가 있다. ‘삼국유사’의 ‘양지사석’ 부분에는 신통력과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가진 신라의 승려 양지의 이야기가 수록돼 있다.
‘양지사석’은 “스님의 조상이나 고향을 알 수 없다”로 시작된다. 시작부의 이 기록 때문에 그동안 관련 학계에서는 스님의 국적이나 신분에 대한 다양한 이견이 있었다. 그럼에도 양지스님이 선덕여왕 때부터 문무왕 때까지 신라 왕경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예술가이자 승려였다는 데는 대부분 학자들이 의견을 같이 한다.
조상도, 고향도 알려지지 않은 한 승려가 1,3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주목받는 까닭은 걸출한 예술 세계와 그의 작품으로 알려진 우수한 불상 때문이다. ‘양지사석’에는 영묘사의 장육삼존상과 천왕상 및 전탑의 기와, 법림사의 주불삼존과 좌우금강신상, 사천왕사의 탑 아래 팔부신장상 등 약 5m에 이르는 거대한 불상부터 20~30㎝의 작은 기와까지 모두 양지스님의 작품으로 기록돼 있다.
흥미로운 기록도 전한다. 그가 영묘사의 불상을 만들 때 도성 안의 남녀가 함께 불상의 재료인 진흙을 날랐다고 한다. 그 때 부르던 노래가 향가로 전하는데,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풍요’라는 향가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이후에도 경주 사람들은 방아를 찧거나 고된 일을 할 때 줄곧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06~2012년 7차에 걸쳐 사천왕사 터를 조사했다. 발굴을 통해 금당, 동서목탑, 회랑, 비각, 석교 등 사천왕사 내 중요한 건축물의 흔적을 확인했고, 기와·토기·불상 등 다양한 불교문화재를 발굴했다. 특히 목탑 기단 면에 배치된 양지스님의 ‘녹유신장벽전’을 발굴하고, 벽전의 위치와 배치를 확인한 것은 발굴조사의 가장 큰 성과였다.
최근 문화재청과 경주시가 협력해 사천왕사 목탑 기단의 정비·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사업의 핵심은 연구소가 복원한 양지스님의 작품인 녹유신장벽전을 재현해 사천왕사지 현장에 설치하는 것이다. 새롭게 태어난 신라시대 양지스님의 작품이 조만간 사천왕사 목탑지에서 다시 선보일 날이 기대된다. /김동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문화재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