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 감소와 고령화 등으로 하락세를 보이던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코로나19의 충격으로 2.0%까지 떨어지며 기준금리 상한선이 크게 낮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화정책 수단이 기준금리 조정뿐인 한국은행으로서는 정책 목표인 물가 안정이나 금융 안정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카드(금리 인상 폭)가 몇 장 남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29일 한은에 따르면 올해 8월 추정 결과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2021~2022년 평균 2.0% 수준이다. 또 2019~2020년 평균 잠재성장률은 2.2%로 2019년 8월에 추정했던 2.5~2.6% 대비 큰 폭으로 떨어졌다. 잠재성장률은 인플레이션 같은 부작용 없이 노동력이나 자본 등 생산요소를 투입해 국가 경제가 최대한 달성할 수 있는 경제성장률을 말한다. 코로나19의 충격으로 고용이 악화한 가운데 서비스업 생산성 등이 떨어지면서 잠재성장률을 끌어내린 것이다.
잠재성장률은 이미 코로나19 이전부터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한은에 따르면 잠재성장률은 2001~2005년 5.1%, 2006~2010년 4.1%, 2011~2015년 3.2%, 2016~2020년 2.7%, 2019~2020년 2.5% 등으로 점차 하락했다. 코로나19의 충격이 일시적이더라도 총요소생산성 하락과 생산연령인구(15~64세) 감소 등 구조적 요인이 작용하는 만큼 앞으로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달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2.5%에서 2.3%로 낮춰 잡았다.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31~2040년 2.0%로 낮아진 뒤 2041~2050년에는 1.7%까지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잠재성장률이 낮아지면 국가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기준금리 수준도 하락한다. 기준금리 인상은 기업 투자나 민간 소비 등을 위축시켜 성장률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지난 26일 기자 간담회에서 “원론적으로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면 소위 정상적인 금리 수준이라고 하는 ‘노멀 레벨(normal level)’ 자체가 낮아진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다. 기준금리 인상 폭이 예전과 같은 0.25%포인트라도 잠재성장률이 3~4%일 때와 2%일 때 경제가 받는 충격 정도는 다르기 때문이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잠재성장률이 2.0%로 떨어졌는데 금리를 빠르게 올리면 기업 투자나 민간 소비가 위축돼 성장률이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현 금리가 비정상적인 수준인 만큼 기준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잠재성장률이 예상보다 크게 떨어졌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한은의 금리 정상화 수준을 1.0~1.25% 정도로 보고 있다. 현 수준에서 한두 차례 인상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삼성증권은 잠재성장률 하락을 감안할 때 이번 인상 사이클에서 한은의 기준금리 정점은 이전의 고점인 1.75%보다 낮아진 만큼 내년 말까지 한두 차례 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메리츠증권도 잠재성장률 하향을 고려한 적정 기준금리(자연이자율)를 1.25~1.50%로 추정했다.
결국 한은이 쓸 수 있는 금리 인상 카드가 한두 장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기업 투자 여건 개선 등으로 잠재성장률을 올려 기준금리 상한선을 높이지 않으면 긴축적 통화정책이 필요할 때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게 된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잠재성장률이 낮아지면서 예전보다 금리를 한 번 올릴 때마다 치러야 하는 비용이 커졌기 때문에 기준금리를 빠르게 인상할 수 없을 것”이라며 “한은에서 자체적으로 생각하는 중립금리가 어느 수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상한선 자체가 낮아졌다고 보면 패가 몇 장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