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치매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조기 진단은 치매 진행을 늦추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후각을 이용해 간편하고 빠르게 치매를 판별하는 기술로 치매 진단 시장에 도전하겠습니다.”
의료 기기 스타트업 엔서의 윤정대(사진) 대표는 29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검사 소요 시간이 길고 값비싼 치매 선별검사를 대체할 새로운 도구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엔서가 개발한 선별 솔루션 ‘엔투(N2)’는 치매 환자의 후각 반응을 측정해 치매 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 치매 환자 대부분이 냄새를 잘 맡지 못한다는 데 착안해 개발됐다. 치매 의심 환자의 뇌 전두엽에 근적외선을 쏴 반사되는 혈류량 데이터를 분석하는 ‘근적외선 분광기법(fNIRS)’을 이용해 의사가 치매 여부를 판정하도록 돕는 방식이다.
윤 대표는 “치매 환자가 일부러 냄새를 맡으려는 후각 반응에서 정상인보다 산소 소모량이 많다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솔루션을 고안했다”며 “근적외선 분광법은 병원에서 환자 손가락에 끼워 산소 포화도를 측정하는 것처럼 흔하지만, 치매에 적용한 것은 우리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엔투는 담뱃갑보다 작은 납작한 패치 모양으로 조사(照射) 장치·센서가 내장된 일회용 검사 기기(프로브)와 판별 소프트웨어로 이뤄져 있다. 프로브를 환자 이마에 붙이고 특정 냄새를 맡게 한 후 혈류량 측정값을 얻는 데 3~5분이 걸린다. 보통 1~2시간이 걸리는 기존 치매 문진법에 비해 검사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게 윤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문진법은 고령자가 대답을 제대로 못 해 정확도가 떨어지기도 한다”며 “기존 혈액검사나 자기공명영상(MRI) 등 영상 진단법도 있는데 이들과 비교하면 비용을 최대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내 위치한 엔서는 광주치매코호트연구단과 손잡고 치매 환자 100명의 데이터 등을 이용해 치매 판별 알고리즘도 개발했다. 판별 기술과 관련한 국내 특허 5건을 출원한 엔서는 현재 전자파 등 의료 기기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팁스(민간 투자 주도형 기술 창업)에 선정됐으며 네이버 액셀러레이터(CVC)에서 투자도 받았다. 그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신청한 임상 및 인허가가 통과되면 이르면 내년 말 병원에 보급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천대에서 의공학으로 학사·석사를 마친 윤 대표는 지난 2019년 마취과 전문의인 김재원 전 대표와 엔서를 공동 창업하고 지난해 7월 대표 자리를 이어받았다. 김 전 대표가 GIST 공학박사 과정 중에 의료 기기의 치매 환자 적용 가능성을 확신했고 윤 대표 등과 함께 1년여간 솔루션을 연구·개발했다.
엔서는 치매 판별 기술에 이어 인지 기능 회복을 돕는 프로그램 등 ‘디지털 치매 치료제’ 분야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윤 대표는 “노인 인구 증가로 국내외 치매 진단 수요가 급속히 커질 것”이라며 “환자나 가족에게 진단·치료의 벽을 낮춰주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