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여당 안팎에서 제기되는 속도 조절론에도 불구하고 본회의 상정을 31일로 연기하면서 강행 처리하려는 것은 당내 강경파의 입김을 외면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30일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 현장에서도 언론중재법 단독 처리 여론이 우세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절차적 흠결 등을 거론하며 신중론을 제안한 목소리가 이전보다는 커졌지만 당내 여론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윤 원내대표와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네 차례나 회동을 갖고 합의점을 모색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민주당은 이날 원내대표 회동 과정에서 야당에 언론법 개정안의 30조 2항(허위 조작보도에 대한 특칙)의 삭제안을 제시했다. 이 조항은 진보 단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도 삭제해야 한다고 지적한 조항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의원총회에서 수정안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징벌적 손해배상과 열람 차단 청구권 등을 그대로 둔 채 법안 처리에 동의할 수 없다는 기류가 강했다”고 전했다.
앞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언론중재법 처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강경론이 다수를 차지했다. 총 발언자 20명 중 허종식·김회재·설훈 의원 등만 “법안 통과에 신중을 기울여야 한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주 열린 워크숍에서 이들은 신중론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아울러 9월 국회에서 공영방송지배구조 개선 법안(방송법 개정안)과 1인 미디어 등 유튜버 규제 법안(정보통신망법 개정안), 포털 뉴스 사업자 공정성 강화안 (신문법 개정안) 등을 패키지로 처리하자는 제안도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허종식 민주당 의원은 “언론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심각한 상황에서 가짜 뉴스 피해 구제법은 당연히 필요한 사안”이라면서도 “하지만 한 달에서 석 달 정도는 언론계를 설득하고 여야가 협의하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드러난 것과 달리) 처리를 미루자는 신중론자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입법 독주 방침을 이어가자 여권 내부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이날 비공개로 진행한 최고위 사전회의에서도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추진해온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우려가 제기됐다. 고용진 수석대변인은 최고위 브리핑에서 “지도부 입장은 법안을 상정해서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여러 절차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의원이 있었다”면서 “반대 의원들은 대부분 ‘내용보다는 절차상 숙의가 필요한 게 아니냐’는 의견이었다”고 설명했다.
김원기·문희상·유인태·임채정 등 여권 원로도 이날 송영길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신중한 처리를 당부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이 자리에서 “쥐 잡다가 독을 깬다. 소를 고치려다 소가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며 “언론 개혁은 해야 하지만 언론중재법은 보완과 숙의, 사회적 합의로 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인태 전 의원은 “(4·7) 재보선 참패의 원인이 무엇인가”라며 “180석의 위력을 과시하고 독주하는 것처럼 (보였다가) 결국 4월 7일에 심판받은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어 “법안 하나 처리하는 데 일주일 늦어지고 한 달 늦어진다고 세상이 뒤집어지느냐”며 “(대통령 선거일인) 내년 3월 9일이 같은 밤이 안 되려면 4월 7일을 잊지 말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