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차기 대선 주자를 뽑는 경선을 시작하자마자 여론조사 ‘역선택 방지 조항’을 두고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 역선택 방지 조항과 관련해 3차 경선(4명)에서 경쟁할 가능성이 높은 유력 후보들인 ‘빅4(윤석열·홍준표·유승민·최재형)’가 반으로 갈려 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홍준표 후보와 유승민 후보는 정홍원 선거관리위원장의 편향성을 두고 사퇴까지 촉구하고 나섰다. 경선의 심판인 선거관리위원회가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자 정 위원장은 “비약하지 말라”며 반발했다. 대선 경선 버스가 출발부터 험로로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 후보는 31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 위원장을 향해 “윤석열 후보만을 위한 경선 규칙을 만들려 한다”며 “그런 식으로 경선 판을 깨겠다면 차라리 사퇴하라”고 말했다.
홍 후보도 이날 정 위원장을 향해 “경선준비위원회에서 확정하고 최고위원회에서 추인한 경선 룰을 후보자 전원의 동의 없이 새로 구성된 당 경선위(선관위)에서 일부의 농간으로 이를 뒤집으려고 한다면 경선 판을 깨고 대선 판을 망치려고 하는 이적 행위에 불과하다”고 질타했다. 홍 후보는 이날 세 차례에 걸쳐 경선 룰 변경에 대한 불만 글을 쏟아냈다. 그는 정 위원장을 겨냥해 “보수 정권이 실패한 교훈을 잊고 당까지 망치려고 시도한다면 이것은 묵과할 수 없는 이적 행위”라고 재차 비판했다.
이들의 거센 반발은 지난 30일 정 위원장의 발언이 도화선이 됐다. 정 위원장은 경선 룰과 관련해 “경준위가 준비한 안은 하나의 안에 불과하다”며 “선관위는 경준위 안을 전부 다시 검토해서 가감하기도 하고,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의힘 당헌(제74조의 2)에 따라 대통령 후보자 선출에 관한 사항을 선관위가 정하고 최고위의 의결을 받겠다는 뜻이다. 이는 곧 경준위가 오는 11월 9일 최종 후보 선출까지 치를 세 차례 경선에 반영될 여론조사에 적용하지 않기로 했던 역선택 방지 조항을 도입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는 여론조사에 더불어민주당이나 (反)보수 진영의 사람들을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다. 경선 룰에 적용될 경우 대구·경북(TK)과 부산·울산·경남(PK)에서 지지율이 두터운 윤 후보와 최재형 후보가 경선에서 유리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두 후보의 캠프는 역선택 방지 조항을 도입하자는 데 힘을 싣고 있다. 반면 청년층과 호남 등 소위 국민의힘 취약 지지층에서 지지율이 뛰고 있는 홍 후보와 유 후보는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유 후보는 이날 “선관위가 특정 후보를 위한 불공정한 규칙을 만들 경우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며 완강한 입장을 거듭 표명했다.
선관위가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자 정 위원장이 직접 반박에 나섰다. 정 위원장은 서울경제에 경선 룰과 관련한 편향성 우려에 대해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후보들과 캠프를 향해 “왜 자꾸 비약하는지 모르겠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런 가운데 각 후보와 캠프는 9월 1일 열리는 정례 회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선관위는 회의에서 역선택 방지 조항 도입 여부를 두고 격론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역선택 방지 조항 도입 여부와 함께 도입된다면 1차(여론조사 100%), 2차(70%), 3차(50%)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할지 등에 따라 셈법이 복잡해지는 상황이다. 다만 선관위의 논의 방향에 따라 서로 입장이 다른 후보들의 반발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