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선거용 퍼주기’ 급급해 ‘성장 잠재력’ 외면한 예산안


정부가 31일 국무회의를 열어 올해 본예산(558조 원)보다 8.3% 늘어난 604조 4,000억 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을 의결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예산(400조 5,000억 원)과 비교하면 5년 만에 200조 원가량 늘어났다. ‘확장 재정’의 기치를 내건 현 정부는 코로나19를 핑계로 삼아 역대 재정을 가장 많이 쓴 정부라는 오명을 남기게 됐다.



끝없는 팽창 예산으로 재정 건전성은 위험 수위로 치닫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직후 660조 원대에 머물렀던 국가 채무는 내년에 1,068조 3,000억 원을 기록해 사상 처음으로 1,000조 원을 넘어선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2017년 36%가량에서 내년에 50.2%로 뛰어오르게 된다. 조세 부담률도 사상 최고인 20.7% 수준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말 그대로 ‘국가 채무 천조국(千兆國)’이 ‘세금 폭탄’을 퍼붓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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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포퓰리즘 예산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건·복지·고용 등 복지성 예산은 217조 원으로 전체 예산의 36%를 차지하고 있다. 사상 최대치이다. 31조 3,000억 원을 들여 만든다는 일자리 211만 개 가운데 노인 일자리가 84만 5,000개에 달한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세금으로 만드는 알바’로 고용 수치를 분식하겠다는 것이다. 청년 대책에도 전년보다 16% 급증한 23조 원을 투입해 매달 20만 원의 월세를 특별 지원하고 20만 원 한도의 무이자 월세 대출 프로그램도 신설하기로 했다. 현금 뿌리기를 통해 ‘MZ세대의 표’를 사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지역 민원 사업 등이 반영되는 사회간접자본(SOC) 관련 예산은 27조 5,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 수준으로 편성됐다.

반면 미래 성장 동력과 관련된 산업 지원 및 연구개발(R&D) 예산은 60조 원으로 복지 분야에 비해 규모와 증가 폭이 크지 않아 성장 잠재력 확충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의 예산은 30조 4,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6.0% 증가에 머물러 전체 평균치를 크게 밑돌았다. R&D 예산의 경우 청년 인턴들이 투입될 ‘데이터 댐’에 디지털 뉴딜 예산의 절반가량인 1조 4,642억 원이 투입된다. 겉으로는 R&D 활성화를 내세우지만 세금을 써서 만드는 단기 일자리 사업에 그칠 공산이 크다. 수출·통상 관련 예산이 28.7%나 줄어든 것도 기업 홀대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국방 예산이 55조 2,277억 원으로 사병 봉급 인상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 출범 이후 최저치인 4.5% 증가에 머무른 것도 ‘자주 국방’ 의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정부는 이날 “내년에는 경기 회복과 코로나 위기를 넘어 미래 세대의 먹거리를 만들 수 있는 중차대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 정부는 임기 내내 단기 성장률과 고용 수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일회성 사업 위주의 재정 투입에만 매달려왔다. 성장 잠재력을 높이려면 규제 혁파와 노동 개혁을 통해 민간의 활력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제는 재정을 투입하더라도 선심성 돈 퍼주기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생산적 복지’ 구조를 마련할 때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방만한 복지 체계를 개편하고 진정 미래를 위해 성장 동력을 창출하는 재정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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