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과거 부정과 자기 합리화는 반복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난 4년은 유독 심했다. 터무니없는 궤변으로 상식을 뒤집고, 위선과 몰염치로 정의를 농락하는 일이 다반사가 됐다.
지난 2015년 2월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댓글 공작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자 “이명박 정부에서 저질러졌지만 박근혜 대통령도 이 문제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7월 대법원은 ‘드루킹 사건’에 연루된 김경수 전 경남지사에게 징역 2년을 확정했다. 댓글을 조작하는 행위는 여론을 왜곡하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범죄다. 김 전 지사는 “진실은 아무리 멀리 던져도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믿음을 놓지 않겠다”고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법원의 유죄 판결이 진실의 힘을 웅변한 셈이 됐다. 하지만 청와대는 한마디 사과 없이 “입장이 없다는 게 입장”이라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여권은 부친의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의원직 사퇴를 선언한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을 향해 연일 공세의 고삐를 죄고 있지만 그럴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국민권익위원회의 부동산 투기 의혹 명단에 오른 더불어민주당 의원 10명은 여전히 당적을 유지하고 있다. ‘흑석 선생’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은 업무상 비밀을 이용한 부동산 투기가 의심된다고 한다. 심지어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이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던 경남 양산 사저 관련 의혹은 윤 의원 부친과 같은 농지법 위반이다.
‘언론재갈법’은 내로남불의 끝판왕이다. 야당 시절 그토록 언론 자유를 외치던 사람들이 권력을 움켜쥐자 언제 그랬냐는 듯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반(反)민주 악법을 밀어붙였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서울대 법대 교수 시절 쓴 논문은 언론 자유의 중요성을 일목요연하게 밝힌 수작(秀作)이다. 지난 2012년 조 전 장관은 ‘일부 허위가 포함된 공직 인물 비판의 법적 책임’이란 논문에서 “공적 인물의 경우에는 (그 비판에) 법적 제재를 가동하는 것은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고 썼다. 또 “(허위사실공표죄를 유죄로 본) 형사 판례는 시민에게 ‘100%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입을 다물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기 쉽다”고도 했다.
조 전 장관의 논리를 ‘언론재갈법’에 그대로 적용하면 언론의 정부 비판 기능, 특히 고위 공직자의 비위 보도를 근본적으로 위축시킬 게 분명하다. 하지만 조 전 장관은 자신의 주옥같은 논문 따위는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최근에는 “한국의 언론 자유 수준은 매우 높지만 언론의 책임 수준은 매우 낮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이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며 핏대를 세우는 이 정권 특유의 궤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1930년대 ‘히틀러의 입’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그림자가 2021년의 대한민국에 어른거리고 있다. “언론은 정부의 손안에 있는 피아노가 되어 정부가 연주해야 한다”고 했던 괴벨스의 언론 장악 정책은 ‘금지, 재정 압박, 편집인 정화’로 요약된다. 법으로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뒤로는 돈줄을 끊고, 언론사 사장을 압박하는 형태다. 집권 여당이 강행 처리하려는 언론재갈법의 본질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폭주를 일삼던 여당은 국내외 언론 단체와 국제기구까지 비판하자 ‘8인 협의체’를 구성해 재논의하기로 한발 물러선 모양새다. 하지만 법안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없고 여야 합의안을 상정해야 한다는 단서 조항도 없이 일정만 미룬 만큼 명분 쌓기를 위한 시간 벌기에 불과하다.
유불리에 따라 하루아침에 원칙이 달라지고, 불의가 정의로 탈바꿈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게 아니라 그때가 틀리면 지금도 틀린 것이다. 그게 바로 수많은 시민들이 추운 겨울날 촛불을 들고 광장에서 외쳤던 이 시대의 공정이며 정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