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가 쏟아진 8월의 마지막 날. 서울 대청중학교 1층 스터디 카페에서는 학생들의 흥미를 끄는 특별한 강의가 열렸다. 만화가와 함께 웹툰의 제작과정을 체험하는 자리가 마련된 것. 개포도서관이 지역 청소년의 인문학 사고를 높이기 위해 계획한 강좌였다. 만화가 최동인씨가 강의를 맡았다.
최 작가는 강의를 시작하며 학생들에게 “그림을 그릴 때 어떤 부분이 가장 어려운가”라고 물었다. 학생들은 “인체를 그리는 게 어려워요”, “배경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질감을 표현하기 힘들어요” 등 평소 그림을 그리면서 어렵게 느꼈던 부분들에 대해 자유롭게 답했다. 최 작가는 “그리기 어렵다고 답한 것을 백 번 이상 그려 봤는가”라고 다시 물었다. 그의 물음에 “그렇다”고 답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최 작가는 “어떤 유명한 화가는 까치발을 든 모습이 잘 안 그려져 두 달 동안 발만 그렸다”며 “프로 작가의 뛰어난 그림도 엄청난 연습을 반복해서 얻은 결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자신이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발견하고 연습하면 누구든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해 학생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이날 최 작가는 학생들과 함께 웹툰을 만드는 과정을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웹툰에서는 캐릭터의 감정을 배경의 색과 선으로 표현해 전달력을 높인다”며 학생들에게 스케치북에 사각의 프레임 4개를 그리고 각 프레임에 ‘희로애락’의 감정을 선과 색으로 표현하게 했다. 학생들은 주로 기쁜 감정은 밝고 따뜻한 계열의 색을 써 부드러운 선으로 표현했고 화나는 감정은 붉은색이나 어두운색의 날카로운 선으로 나타냈다.
최 작가는 웹툰의 캐릭터를 설정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설명을 이어갔다. “사람을 캐릭터로 설정할 때는 키, 얼굴의 생김새, 즐겨 입는 옷과 헤어스타일 등의 외적인 요소뿐 아니라 좋아하는 음식, 취미, 특기, 습관, 태도 등 보이지 않는 요소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설정돼야 이야기로 풀어낼 소재를 만들기 쉽고 독자들도 캐릭터에 쉽게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학생들에게 자신의 앞, 옆, 뒷모습을 사진으로 담게 한 후 사진을 참고해 각자 설정한 캐릭터의 모습을 그리도록 했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는 무엇보다도 관찰이 중요하다”며 “사진을 관찰하며 그림을 그리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옷의 주름, 피부 결 등의 표현이 섬세해진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웹툰 작가들도 하는 방법”이라며 관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 작가는 강의를 마치며 “자신이 못 하는 부분을 발견하는 것을 즐겨야 한다”며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알면 연습해서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그림을 그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의 무한한 상상을 자유롭게 표현해 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최씨는 ‘낭만고양이, 인간세상을 탐닉하다’, ‘용산개 방실이’ 등의 저서로 주목받고 있는 작가다.
개포도서관 마련한 최 작가의 ‘나의 일상의 웹툰이 된다면’ 강좌는 ‘고인돌2.0(고전·인문아카데미2.0: 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의 프로그램의 하나로 개최됐다. ‘고인돌2.0’은 서울경제신문 부설 백상경제연구원과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및 평생학습관이 2013년부터 함께한 인문학 교육 사업이다. 성인 중심의 인문학 강좌로 시작한 ‘고인돌’은 지난해부터 명칭을 ‘고인돌2.0’으로 바꾸고 서울 전역의 중·고등학교와 연계해 강연을 하고 있다. 역사와 건축, 경제, 과학,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의 총 56개 강좌로 구성된 올해 제9기 ‘고인돌2.0’은 특히 교과목과의 연계성을 높여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
대청중 2학년 최재용 군은 “평소 접하기 어려운 웹툰과 관련한 전문가의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뜻깊었다”며 “나의 진로를 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1학년 김주영 군은 “사진을 관찰하며 그리는 방법 등 평소 그리기 어려웠던 부분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준 유익한 시간있었다”고 참여 소감을 밝혔다. 1학년 조수민 양은 “작가의 설명을 듣고 실습하는 체험 위주의 강의여서 더 즐겁게 참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심주희 대청중 사서 교사는 “학생들이 무거운 공부에서 벗어나 평소 즐겨보는 웹툰의 제작과정을 이해하고 체험하며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었던 강의였다”고 말했다.
고인돌 2.0은 올 11월까지 80여개 중·고등학교를 찾아가 청소년들의 인문학의 사고를 높이기 위한 강연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 이효정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원 hjlee@sedaily.com